이종태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연구소장

우리나라 대표 교원단체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있다. 이 단체들은 소속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같은 권익 신장을 공동의 목표로 하면서도 각종 교육정책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정치권과 연결되기도 하고, 특히 교육감 선거에 개입하기도 하면서 본래의 설립 취지를 잃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에, 에듀인뉴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교총과 전교조의 설립 과정과 활동에 관한 사항을 점검하고 이들 단체가 대한민국 교육과 함께 성장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진단해봤다. 전문가 좌담을 통한 진단에 이어 이번에는 이종태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연구소장으로부터 한국교총의 발전을 위한 제안을 싣는다. <편집자 주>

머리말

읽을거리가 별로 없던 유년시절, 방학이 시작되는 날 받는 ‘방학책’(방학생활)은 나에게 숙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글들을 제공하는 ‘새책’이었다. 간간이 배치된 우화나 토막 상식들 가운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만큼 방학책은 나에게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방학공부 표지. 출처=https://blog.naver.com/dokken0109/120106214961>
<방학공부 표지. 출처=https://blog.naver.com/dokken0109/120106214961>

방학책 표지에는 ‘대한교육연합회’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몰랐고 방학책은 그저 교과서와 같이 나라에서 만들어 나누어주는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책을 만든 단체의 성격이 어떻고 또 그 책을 만들어 전국의 학생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교육학을 공부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갑작스럽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선뜻 수락하기 어려웠다. 평소 이 단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두지도 않았거니와 솔직히 말해 비호감 정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교원단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편집자의 요구와 우리나라 교직사회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평소 문제 의식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읽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편파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국교총을 보는 한 교육학도의 개인적 시선이라는 점에서 너그러이 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본 한국교총의 성격

한국교총의 원조는 1947년 11월 13일에 창립된 ‘조선교육연합회’이다. 그런데 이 단체의 설립 동기는 좌익계 교원단체의 견제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당시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을 보면 이해될 만한 배경이기는 하다.

해방 직후 친일 청산과 자주독립을 열망하던 일단의 교사들은 미군정이 시작되기 전에 친일청산과 교육 재건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군정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식민지 관행을 이어가자 그 대응의 목적으로 1946년 2월 17일 ‘조선교육자협회’를 창립하였다.

이 단체는초등학교에서 대학교 수준에 이르는 교육계의 주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었지만 좌파적 이념 성향으로 인해 처음부터 미군정청의 견제 대상이었고, 이후 좌우 이념대립이 본격화되면서 불법 단체로 지목되어 전면적인 탄압을 받았다.

조선교육연합회는 조선교육자협회가 거의 무력화된 시점에 창립되었다. 당시 이 단체의 창립을 주도한 미군정청 문교부장 오천석은 ‘정치적·사상적으로 혼란을 거듭하던 교육계의 질서를 바로잡고, 교육자들의 사상적 단결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천명하였다.

이 단체는 전문직 교원단체를 표방했지만, 교원의 전문성 신장보다는 교직사회 내부의 정치적 대응을 주된 목표로 삼았던것 같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단체의 명칭은 ‘대한교육연합회’(이하 ‘대한교련’)로 변경되었다.

이후 대한교련은 전교조가 창립되는 1989년까지 40여 년 동안 유일한 교원단체(물론 4.19 당시 약 1년 가까이 교원노조가 등장했었지만)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해 왔다.

외형적으로는 교원의 권익 보호나 복지 향상을 명분으로 한 다양한 활동과 함께 현장교육연구발표대회와 같은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한 활동도 전개했지만, 속 내용을 보면 장기간 이어진 독재권력 아래서 교육부(문교부)를 대신하여 교육이념과 교직사회를 통제하는 준정부기구의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 단체의 태생적 특성이나 조직 및 운영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 단체는 교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권의 필요로 만들어졌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출범 당시는 물론 이후 수십 년 동안 ‘어용단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에는 회원들의 권익보다는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해왔다는 평가도 포함되어 있다.

<교육평론 1964년 7월호 표지>
<교육평론 1964년 7월호 표지>
<방학공부 표지. 출처=https://blog.naver.com/dokken0109/120106214961>
<방학공부 표지. 출처=https://blog.naver.com/dokken0109/120106214961>

1959년 한 잡지에 발표된 글(《교육평론》, ‘대한교련의 맹점을 해부한다.’)을 보면 대한교련을 ‘어용기관’, ‘회비만 떼어가는 달갑지 않은 존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용 시비는 정치 민주화로 제2의 교원단체(전교조)가 등장하면서 대한 교련이 한국교총으로 변신할 때까지 지속하였다.

대한교련의 조직 및 운영 방식을 보면 이 단체가 일반 교원의 권익이나 관심과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윗글에서는 이 단체가 지나치게 관료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각 시·도 단체의 간사나 회장이 ‘노쇠한 교장들로 꽉 차 있다’고 꼬집고 있다. 일반 회원들의 뜻과 무관하게 간부들이 정권이나 교육부 의중을 알아서 반영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독점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교련이 수십 년 동안 교직사회에서 나름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단체의 회원이 되는 것이 교장 승진 경쟁에서 유리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관리자 중심의 대한교련 간부들은 교육부나 교육청 조직과 혼연일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들과 가까이 할 경우 자연스럽게 승진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승진에 별로 관심이 없는 대다수 평교사에게는 별로 매력이 없는 단체였다.

대한교련은 1989년 11월 29일 대의원대회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로 명칭을 바꾸었다. 이것은 같은 해 5월에 있었던 전교조 창립에 대응한 조치로서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단체의 위상이나 역할에 대한 변신을 시도한 것이었다.

교원의 권익이나 복지를 놓고 전교조와 경쟁해야 하는 복수 교원단체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명분상으로 더는 정권의 시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했고, 일반 교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도 수용해야 했다.

시종일관 정부(정권)의 의중을 알아서 따르거나 지시를 떠받드는 방식의 활동 대신 정부에 일반 교원의 뜻을 전달하고 요구하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성은 1991년에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반영되었다. 이 법 제11조제1항에는 ‘교육법 제80조의 규정에 의한 교육회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과 지위향상을 위하여 교육감 또는 교육부장관과 교섭·협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써 한국교총은 노동조합법상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갖는 교원노조와 유사한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한국교총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상과 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교총이 이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교원의 권익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명실상부한 자발적 교원단체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을까? 몇 가지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정권의 정치적 성향이나 시대적 여건의 변화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교총이 더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목소리를 내는 데 급급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최근에는 교원의 이익에 반한다 생각되는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일종의 단체행동마저 불사하기도 한다.정치적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확립한 셈이다.

조직적으로도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평교사 출신이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상향식 의사결정방식 요소도 일부 채택하고 있다. 일반 교원들의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쟁 상대인 전교조가 오랜 기간 교육보다는 정치적 사안들을 쟁점으로 삼아 온 것과 대조되는 활동을 보임으로써 전교조에 실망한 교사나 일반 국민의 일부를 지지자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보인다.

반면, 여전히 한국교총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소들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한국교총의 주요 구성원이 교장을 위시한 관리자 또는 승진을 앞둔 경력직 교사들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대한교련 시대의 특성을 상당 부분 답습하는 것으로 여전히 일반 교원과는 거리가 있는 단체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인적 구성에서 비롯되는 보수적 성향은 시대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학교교육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최근까지 쟁점 사안이었던 교장 공모제 확대 정책에 한국교총은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교장 또는 교장 승진 대기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단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적 요구를 외면한 채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한 반응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한국교총은 2018년 6대 현안과제를 제시하고 전국교원 청원운동을 시행했다.>

최근 한국교총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6대 현안 과제’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대 전제로 최근의 헌법 개정 논의를 겨냥하여 헌법에 ‘교권’을 명시하자고 제안하면서 ‘학생 생활지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아동복지법 개정’, ‘교권침해에 강력히 대응하는 교원지위향상법 개정’, ‘학교폭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학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이관’, ‘교원성과상여금 차등지급제 폐지’, ‘교원평가제 전면개선’, ‘교원 사기진작을 위한 교원처우개선 예산 반영’ 등을 국회와 정부에 청원하기 위하여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총이 교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이익단체라는 점에서 이러한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이익단체라 해도 공익에 반한다든지, 교육이 견지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넘어서는 행위는 용납되기 어렵다.

즉, 교원의 권익 보호나 복지 향상을 위한 활동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와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 안에 있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한 채 소아적인 이익에 집착할 경우 그 단체나 소속 구성원들은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수구적인 존재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우리나라 양대 교원조직인 한국교총과 전교조 활동에서 이러한 조짐을 읽고 있다. 교육의 미래나 아이들은 오간 데 없고 단지 교원들의 이익과 권리 확대만 강조하는 느낌이다. 제발 그 조짐이 현실화되어 교원과 국민이 멀어지지 않기를 고대한다.

교직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아이들과 호흡을 함께 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