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팀 ]제3강 도덕성의 개념과 양심의 기능이돈희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어떤 사람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앎의 도덕성과 행함의 도덕성 --두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두고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본래 그 장난감 자동차는 창수의 것인데 영수가 한 자리에 있게 되면서 그것을 두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창수는 자동차가 자기 것이니까 영수가 뺏어가지 않도록 그것을 지키고자 하고, 영수는 그것이 탐나서 가지고 싶어 한 것이다. 뺏고 지키고 하는 싸움이 계속되면 어른들은 아주 초보적인
[에듀인뉴스] 좋은 수업이 되려면 학생과의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관계 형성을 위해선 먼저 학생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림책은 마치 마법처럼 학생들의 얼어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관계 형성을 통한 수업에서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의 삶, 교사의 삶, 학생의 삶을 연결시켜준다. 는 회원들과 그림책을 통해 그림책 작가, 교사, 학생이 동행하는 그림책 수업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에듀인뉴스] 한문과 수업도 그림책과 함께 할 수 있다.맹자에 나온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가르치면서 그림책 네 개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중세 동양사회에서의 행복 추구중세 동양사회에서는 정착된 종교를 배경으로 한 사회문화가 커다란 변화 없이 유지됐다. 서양에 비해 경제·문화적으로 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비교적 안정된 사회문화를 유지해 왔다.특히 중세 이후 동양문화의 서구사회 유입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르네상스의 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동양에서는 근대 19세기 후반 서양의 영향을 받기 이전까지 종교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심층적인 영향을 미쳤고, 행복을 추구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서양사회에 비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힌두교에서의 행복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힌두
샤먼을 통한 행복 추구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하기 위해 거대한 돌이나 나무 등 자연물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가 지배적이었던 고대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샤먼(제사장)에 의존하는 사회의식이 발달하였고, 한 개인의 행복은 소속된 샤먼의 영향력에 크게 좌우 되었다.샤먼이 중재하는 신(神)의 구원을 얻는 일 자체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원시종교적 신앙심’이 오랜 동안 크게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로부터 다양한 종교가 탄생하였다.그 영향으로 기원 전 4천 년 경 이후 고대사회에서는 특정 종교에서 숭
착한 성품을 돋우어라 이돈희 에듀인뉴스 발행인 어떤 사람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앎의 도덕성과 행함의 도덕성두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두고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본래 그 장난감 자동차는 창수의 것인데 영수가 한 자리에 있게 되면서 그것을 두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창수는 자동차가 자기 것이니까 영수가 뺏어가지 않도록 그것을 지키고자 하고, 영수는 그것이 탐나서 가지고 싶어 한 것이다. 뺏고 지키고 하는 싸움이 계속되면 어른들은 아주 초보적인 도덕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아마도 먼저 영수로 하
멀리 돌아가 이를 필요가 없다. 동쪽의 대문이라는 뜻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의 옛 서울에는 사대문(四大門)이 있었다. 지금도 도심 한가운데에서 일부가 잘 버티고 서있는 이 사대문을 자세히 보면 누각 높은 곳에 현판이 걸려 있다. 사대문의 ‘본명’이다.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 등은 부르기 좋게 만든 호칭에 불과하다.이 동대문의 진짜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몇 해 전에 화풀이 노인네의 방화로 불에 탔다가 최근에 복원한 남대문의 본명은 ‘숭례문(崇禮門)’이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서쪽에 버티고 있던 서대문의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