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순 서울여대 명예교수

중세 동양사회에서의 행복 추구

중세 동양사회에서는 정착된 종교를 배경으로 한 사회문화가 커다란 변화 없이 유지됐다. 서양에 비해 경제·문화적으로 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비교적 안정된 사회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중세 이후 동양문화의 서구사회 유입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르네상스의 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양에서는 근대 19세기 후반 서양의 영향을 받기 이전까지 종교가 사회를 유지하는 데 심층적인 영향을 미쳤고, 행복을 추구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서양사회에 비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

<힌두교에서는 암소를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여겨 신성화한다. 사진=네이버지식백과>

힌두교에서의 행복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힌두교에서는 각자가 마음속에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행복이나 불행 모두는 개인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의 욕망에 세상을 맞추려 하지만 않는다면 완전하고 지속적인 행복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즉 행복이란 삶을 사랑하는 것으로 우리가 세계를 향한 시선을 바꾸는 즉시 가능해지기에 우리의 존재 상태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고구려의 사신도. 사진=네이버지식백과>

도교에서의 행복

도교에서는 개인은 항상 변화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것이 바람직하며, 세상과 사회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알고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을 관찰하며 자신의 천성에 따라 살면서 개인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길, 곧 삶을 사랑하며 열린 마음으로 삶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진정한 기쁨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명상을 통해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교에서의 행복

불교에서는 힌두교의 신분(카스트) 제도에 대항하여 영원한 자아(영혼)의 존재를 거부하며 자아를 버려야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그 자체로 고통이 아니고 우리 자신의 무지 때문에 자아, 집착, 현실의 왜곡된 지각 속에 갇혀 산다는 것이다.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게 되면 잘못된 지각과 부정적인 정서로부터 해방되고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집착을 낳는 욕망의 제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지려는 고귀한 욕망, 선을 향한 노력 등을 장려해 개개인을 자유와 자율로 이끌어 가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고 그 방법으로 명상(선), 지혜 습득, 보시(선행) 등의 방법을 권유한다.

<신.지.예.의.인. 인의예지신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다섯가지 덕목으로 유교의 핵심 덕목이다.>

유교에서의 행복

유교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위해선 먼저, 성인에 이르도록 덕(德)을 쌓아 사물을 통찰하는 지혜를 습득하고, 깨달음을 얻은 후 덕의 힘으로 이웃을 사랑으로 교화해(덕을 실천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도우면, 세상을 진리의 세계인 대동사회(행복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국민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덕목을 실천해 오복을 추구하면, 천지우주의 질서가 인간세상에서도 그대로 운행되어 곧 진리가 실현되는 행복한 세상이 된다는 신념을 강조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해 뜨기 전, 정오경, 오후 3∼4시경, 해진 후, 저녁 7∼9시경) 카바 신전이 있느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사진=네이버지식백과>

이슬람교에서의 행복

이슬람교는 여타 종교들에 비하여 비교적 늦게 등장해서 그리스-로마 문명과 아시아 문명(페르시아문명, 인도문명, 중국문명)을 수용해 문명의 다원성과 융합성이 매우 강한 특성을 지닌다.

이슬람이란 순종과 평화를 의미하는데, 일반 신자는 신(알라)에 대한 복종자라는 의미를 중시한다.

중세에는 아시아적 동양문명으로서 서구사회 문명부흥의 중계자이며 기폭제로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수피즘의 행복 연금술이 이슬람교의 행복을 대변하다시피 했는데, 알라 신과 일체가 되는 데서 나오는 행복감과 각성(覺醒)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애로운 ‘신’과 하나 되는 초자연적인 합일의 경험을 중시하는데, 이 경험은 곧 마음의 전환인 ‘각성’이라 하며, 의식 속에 각성이 일어나는 경우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신의 권능을 무조건 수용하고 신의 친교를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데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각성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갖는다는 행복의 연금술적 기능을 강조한다.

즉 신과의 합일에 이르면 연금술적 변화인 영혼의 변화를 초래하며 이때 자아의 소멸 곧 무(無)의 경지(신비주의적 성취)에 도달하는 경우 최고 수준의 행복(지복)을 누린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 카노사에 있는 성으로 940년 바위산에 지어졌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1075년 초 "성직자 임명권은 교황만이 가진다"고 서유럽 국가의 국왕에서 선언하자 신성 로마 제국의 국왕 하인리히 4세는 "따를 수 없다"고 말하고 이듬히 1월 독일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폐위'하는 결정을 했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국왕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자 국왕을 지지하던 성직자와 제후들은 국왕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때 국왕은 교황이 머물던 카노사 성으로 찾아가 자신의 잘못을 읍소했으나 교황은 국왕을 3번의 밤낮이 지나서야 만나주었다. 이를 후에 '카노사의 굴욕'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진=네이버지식백과>

중세 유럽에서의 행복 추구

중세에 유럽을 지배한 기독교 정신은 신을 ‘사랑’함으로써 구원(신의 은총)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는 교리를 그리스 철학을 이용해 합리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정체제(神政體制)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무시한 채 신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강조하는 암흑시대를 초래했다.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을 적극 활용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교황들은 정치적으로 종교를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으면서 종교를 통한 신과의 교류 하에서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통제 중심의 사회문화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개인들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신의 도움 없이 행복이 지상에 정착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신념이 지배적이어서 신의 구원을 얻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했기에 교황 중심의 신정체제는 천 년 이상 지속할 수 있었다.

최고의 행복은 구원받는 것이며 신과의 합일에 이르러야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생각에 구속된 신앙생활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이 유사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상인을 포함한 부유한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대규모 교회건축과 종교관련 예술작품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중세 초기부터 수많은 예술가가 탄생하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르네상스시대가 전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세 후반에는 교황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국왕과의 세력다툼으로 인해 개인들은 여전히 평안한 사생활을 보장받지 못했다.

개인들은 교황과 국왕으로부터의 수탈에 시달렸지만 유럽사회는 전반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관심도가 상향되기 시작했다. 신성로마제국의 멸망과 종교개혁을 계기로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하면서 유럽사회는 신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을 강조하는 행복관을 추구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인간 중심으로 재수용해 이성의 지배에 의한 합리적인 쾌락 추구를 새롭게 강조했고, 문예부흥의 정신에 입각한 계몽주의운동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체계적으로 강화됐다.

즉 행복은 신이 주관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의식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개인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낭만주의가 세력을 형성하게 됐다. 이는 문화예술과 학문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