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IOT, 코딩, 빅데이터..."공포 마케팅으로 불안감 조성"
어떤 직업 위해 노력?..."교사는 '함께 살아갈 힘' 길러주는 것"
거창한 담론 재생산 사회에 묻고 싶은 본질..."기본으로 돌아가라"

[에듀인뉴스-실천교육교사모임 공동기획: 흔들리는 교육, 그리고 교사]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만, 학교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에듀인뉴스>는 신학기를 맞아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따른 각종 법령의 등장, 교사 패싱 교육정책 등 현안을 집중 조명하고 교사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10부작 신학기 기획을 마련했다.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저자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저자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

[에듀인뉴스] 제목 한번 거창하다. ‘미래사회’라니, 그리고 ‘미래사회가 원하는 아이들’라니. 제목에 짓눌려 하마터면 글 시작도 전에 질식할 뻔했다. 특히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니 ‘인공지능과의 경쟁’이니 하는 말들이 화두가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사는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며 비장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던 어떤 광고의 카피부터 떠올리게 된다. 어쩐지 일류 혹은 1% 또는 최고의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돌려 묻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다르게 질문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공부를 왜 하는가, 그리고 아이들을 왜 학교에 보내는가.

강조하는 교육과 필요한 교육 다른 현실..."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널리 알려진 공부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진리 탐구와 인격 함양을 통해 한 개인이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함이요,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려는 방편을 구하기 위함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은 미래사회 담론은 대체로 후자의 공부 목적을 더 자극한다. 게다가 많은 미래학자가 기술의 발달과 사회변동을 연계하여 논의하면서, 이로 인해 미래의 직업 상황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측을 앞 다투어 내놓음으로써 더더욱 후자가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가능한 한 미래사회 변화를 예측하고,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대비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여긴다. 과거에 잘 나가던 직업이나 현재 각광받는 직업을 구하기 위한 소모적인 공부를 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학습을 하라고 권고한다.

거기에 더해 날로 진화하는 인공지능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포 마케팅까지 나와 연약한 개개인의 마음속에 깊은 불안을 심어 놓는다. 심지어 이제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AI(인공지능)이니 IoT(사물인터넷)이니 코딩, 빅데이터 등의 말들이 튀어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마음은 급기야 앞으로의 사회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그 방향을 틀게 되고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거라는 절박함만을 남긴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미래 직업을 부모가 나서서 미리 설계해 주고, 이를 위해 부모의 능력이 닿는 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사교육을 시키는 데 몰두하느라 허리가 휜다. 아이 하나 기르는 데 얼마가 드는 줄 아느냐고 울상 짓고, 그러니 결혼도 못 하는 거 아니냐는 아우성도 나온다.

중학교는 특목고나 자사고 입학 실적을 가지고 좋은 학교냐 아니냐를 가르고, 고등학교는 소위 일류대학을 얼마나 보냈느냐를 잣대로 평가한다. 학원에서 치르는 레벨-업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체험학습을 신청한다는 기괴한 소문마저 돌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공포 마케팅이 확실하게 먹히는 지점이다.

기술의 무한 발달로 인해 미래사회가 지금과는 달리 큰 변동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치자. 하지만 클라우스 슈밥은 그의 최근 저서 ‘제4차 산업혁명’의 서문에서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흥미로운 여러 과제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문제는 새로 등장한 과학기술 혁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만들어나갈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개의 인간들이 심각하게 부딪히는 문제는 오히려 기술의 무한 발달이 파생시키는 인간소외와 빈부 격차, 특히나 직업 간 소득 불평등의 심화 같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일상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현 중학교 3학년(2003년생) 전후 세대가 취업 시장에 뛰어들 2030년이면 청년 인구(25~29세)가 13년 전보다 25.1% 감소(316만1000명→236만6000명)하고, 취업자의 상당수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할 만큼 산업 현장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현재 7세 이하 어린이 중 65%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되리라 예측했다. 그러니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미래사회에서는 이런 직업이 대세야. 그러니까 무엇보다 이러 이러한 역량을 길러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 울림인가.

슈밥의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술의 진화에만 근거하고 있는 현재의 미래사회 담론은 우려될 수밖에 없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변화하는 시대..."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예측하기 힘든 사회 환경의 변화와 첨단기술의 향연 앞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역량을 키워 줄 것인지가 교사의 큰 고민거리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교사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어떤 직업이 유망하니까 그것을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도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학자들의 다양한 주장을 그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책임 있는 가르침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살아갈 힘’을 길러주고자 하는 것이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르쳐 왔던 기본적인 가치들이 더 중요해졌다고 본다. 아무리 거창하게 미래 어쩌고 해도 우리 아이들을 미래의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해 교육에서 강조해야 할 사항은 결국 소외와 격차를 극복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을 지향하는 것이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미래사회 직업훈련의 장으로 보는 개념은 지나치게 협소하며, 교육의 본질에 비추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럼 다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우선 이 제목은 교육의 주체를 아이들로 놓고 있지 않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주어는 ‘미래사회’이고 아이들은 미래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상에서 아이들은 종속변수가 아닌 주인이며, 미래사회는 이 개개의 주인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장이다. 학교는, 특히 공교육은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사회의 주인으로 그리고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발적 학습자로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초·중·고교나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평생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필요와 관심사에 따라 평생에 걸친 자발적인 학습이 필요하고 교육은 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부모의 관리나 사교육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스스로 뭘 배우고 싶은지 내적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시대 변화의 파고를 넘는 것이 버거워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혼란을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빈부 격차와 같은 사회 불평등은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사회에서는 더욱 심해질 확률이 높고, 난민 문제나 이민문제와 같은, 이제까지 우리사회가 겪지 못한 난제들이 새롭게 대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인간과 같은 공감능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러한 능력은 상대적으로 비교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점점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전체 구성원에서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을 조절하고 타인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갈등 관리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독창성도 미래 사회에 꼭 갖춰야 할 역량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독창성’이라는 것이 ‘특이함’이나 ‘튀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주변과 협력할 줄 아는 동시에 ‘유용하고’ ‘필요한’ 그 무엇을 창조해내는 능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여러 학자가 말하는바 독창성의 근원은 인문학적인 소양이 된다. 공교육은 현실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는 장이 되어야만 한다.

공동체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 역시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은 기계하고 대화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소통 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결국 결정은 사람이 하므로 소통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높이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코칭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결국, 교육에서만큼은 기본이 중요하다"

한번 생각해보자.

내적 동기 앙양(昻揚), 함께 살아가는 삶을 위해 요구되는 공감능력, 공감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갈등 관리 능력,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하는 독창성, 소통 능력.

지금 제시하는 것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가치들이라고 생각되는가? 학교에서는 언제나, 특히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가치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왔다.

그러니까 결국 돌고 돌아 ‘교육에서만큼은 기본이 중요하다’는 원칙으로 회귀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교육의 가장 근원적인 화두는, 특히 공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결국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어떤 가치가 ‘기본’이 되느냐 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1등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2등도 있고 3등도 있고 10등도 있으며, 꼴등도 함께 살아간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다종다기(多種多岐)한 모습으로 얽히고설키면서 사회 안에서 같이 부대끼며 존재하는 것이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매우 단순하다. 복잡하고 거창한 것들이 담론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묻고 싶은 것이다.

"뭣이 중헌디?"

이의진 서울 누원고등학교 교사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 미래교육 팀장으로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대학진학지원단과 교육연구정보원 진로진학상담센터 상담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의진 서울 누원고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 미래교육 팀장으로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대학진학지원단과 교육연구정보원 진로진학상담센터 상담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재 예정 순서=1. 교육법으로 알아보는 마일리지승진제/ 2. 극한직업: '학폭' 담당 교사의 삶/ 3. 현장교사 없는 교육과정: 이대로 표류해야하나/ 4.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5.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 배제를 말하는가/ 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7. 교사의 행정업무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 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9. 누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인가/ 10. 흔들리는 입시-어디로 가야 하나/ 11.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