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함은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용인 신봉고 교사

[에듀인뉴스-실천교육교사모임 공동기획: 흔들리는 교육, 그리고 교사]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교사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싶고, 학생들은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지만, 학교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에듀인뉴스>는 신학기를 맞아 교육이 흔들리는 원인을 알아보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팀'과 함께 사회적 이슈에 따른 각종 법령의 등장, 교사 패싱 교육정책 등 현안을 집중 조명하고 교사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10부작 신학기 기획을 마련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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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여기 한 나라가 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이 있고, 5단계의 계급별로 육체적 조건까지 인위적으로 조절되며, 심지어 키, 피부색, 머리카락 색깔까지 결정되어 태어난다. 각 계급은 그 계급에 맞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의도된 교육을 받고, 훈련과 정신세계까지도 조정되는 과정을 거치며 자라난다.

가장 높은 알파 계급은 온갖 우월감과 특권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라고, 다른 열등한 계급은 본인이 얼마나 열등한 존재고 굴종적이 삶을 사는 것이 합당한지를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도록 양육된다.

심지어 가장 낮은 델타나 엡실론 계급은 몇 가지 유전타입을 조정해 고의로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해, 단순노동과 하위직을 담당하며 살아가도록 한다. 조건반사와 무의식을 이용해 그러한 삶에도 만족을 느끼도록 국가적으로 양육하는 나라이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완벽한 출산과 양육 시스템과 함께 그들의 나라가 더욱 완벽한 멋진 신세계인 비결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이 세계에 속한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행복을 주는 알약인 ‘소마’가 그 비결이다. 모든 국민이 필요에 따라 소마를 섭취하면 10가지가 넘는 우울감, 불행감, 불안감을 날려주고, 마음의 쉼을 누리며, 행복의 세계를 느끼게 하는 신통한 알약이다.

삶이 괴롭고 우울하고 불행한가? 바로 소마를 드시라. 깊은 휴식으로 행복감을 주리라! 소마를 통해 쉽게 가질 수 있는 세계! 멋진 신세계! 쾌락만이 절대 선으로 여겨지는 세계가 바로 여기 있다.

그렇다. 이 놀랍고 멋진 신세계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1931년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 상상으로 그려낸 미래 사회다. 이것이 과연 미래 사회이고 상상 속의 세계이기만 한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날 그의 상상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혹시 우리도 이러한 세계를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 그러하다면 그것이 참으로 멋진 신세계이긴 한 걸까?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버닝썬 사건과 연루된 청춘스타들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 모두가 청소년들의 ‘우상’이기도 했거니와 그중 한 명은 사업을 펼치고 인생철학을 실천하는 면에서도 청소년들의 멘토 역할을 했고, 성공한 인생의 모범사례로 비치는 이미지 메이킹에 능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인생 성공의 상징으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연예인으로 성공하고, 사업가로도 승승장구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인터뷰에선 거침없이 그의 인생철학을 멋들어지게 외쳤다.

그는 ‘멋대로 살자,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멋대로 살아야지’라고 외치면서 자신이 가진 멋을 다 보여주었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누리는 행복한 일상을 과시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살았던 멋대로의 삶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소마’가 주는 쾌락으로서의 의미였던 것이었다. 

겉으로는 주체적이고 성공한 삶처럼 보였지만 끝까지 간 욕망과 쾌락의 추구로 범죄조차도 재미와 쾌락으로 취급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를 따랐던 청소년들의 충격이 꽤 크다. 그가 가진 자랑이었던 자기만의 ‘소마’였던 것들이 알고 보니, 정말 ‘소마’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가 인생 성공의 비결로 외쳤던 ‘멋대로 살자’가 진정한 쉼이나 쾌락이 아니라, 거대한 사기극과 범죄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정말 아픈 충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학생들에겐, 그렇다면 참된 위로와 삶의 쾌락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버닝썬 입구에 설치된 버닝썬 로고
버닝썬 입구에 설치된 버닝썬 로고

오랜 세월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학생들의 인생관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자, 배워서 남 주자, 열심히 공부해서 효도하자 등의 인생관들이 어느 순간 부자가 되겠다고 바뀌었다. 돈을 버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가장 최근엔 제멋대로 살자, 한 번 뿐인 인생 후회 없이 즐겁게 살자 등의 인생관이 퍼지는 추세다.

한 번 뿐인 인생 제멋대로 살자는 말 자체는 나쁘지 않다. 좋은 측면으로 보면 주체성과 자기 인생에 대한 독립적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 바람직하고 씩씩한 인생관이라고 본다.

하지만 자칫하면 앞 연예인의 주장처럼 멋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는 타인을 유린하거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해도 되는 것처럼 사용될 수도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런 변화와 함께, 학생들의 삶의 고통을 견뎌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도 큰 변화이다. 고독하기도 하고 현실의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시험 직전의 압박감이 고통스럽기도 할 텐데 건강하게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고 그 문제를 넘어서는 과정을 가르치는 일은 해가 갈수록 어렵다.

학생들이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쉽게 무력해지거나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분노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고통을 넘어서는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 생의 능력인지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개인으로서의 아이들이 현실의 중압감과 무게감을 어떻게 해소하며 이겨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매우 안쓰러운 마음이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 다니고, 저녁 시간엔 창문 커튼을 내려 학원 영업이 끝난 것처럼 위장한 학원 교실에서 11시 12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가서 잠깐 자고 학교에 가는 현실, 그렇게 겨우겨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오로지 미래만을 위해 전진하는 학생들의 삶의 무게란 생각하면 할수록 어른들의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고통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하느라 내신과 수행평가가 고통스럽고, 현실과 괴리된 터무니없이 높은 수준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사진=jtbc 캡처
사진=jtbc 캡처

그럼에도 인생의 진로를 모색하고 성장하는 시기에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공부라는 것 자체가 일단 글을 읽어야 이해를 할 것이며, 연필을 들고 손힘을 사용해 몇 줄이라도 써 봐야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머릿속에서 골 빠개지는 아픔을 거쳐 지식과 사고력으로 축적되어 이루어진다. 이조차도 차근차근 발달 단계에 따라 이뤄지기보다는 밤낮 가리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무차별적으로 들이 부어졌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럼에도 성장을 위한 고통의 내용을 얼마나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채워 건강한 성장을 돕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성장 터널을 건너가면서도 자기만의 쉼을 찾아내고 자신을 위안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멋진 신세계’의 현실처럼, 아이들의 머릿속에 ‘넌 안돼’, ‘넌 열등한 종족이야’, ‘오로지 다른 계급을 위해 살아야한다’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시스템은 아닌가. 자라는 아이들에게 유아시절부터 꽃과 책을 보여주며 전기 자극을 주어, 자연과 독서를 혐오하게 하는 것이 그들이 주는 위로의 방식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오로지 ‘소마’나 ‘성적인 쾌락’에서 쉼을 얻도록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랄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휴식은 무엇인가. 이들의 고통을 위로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친 하루하루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아이들의 ‘소마’는 무엇이며, 학업포기를 대가로 생긴 무한 시간의 여유 속에서 누리는 ‘소마’는 무엇인가.

학생들의 삶을 가만 들여다보길, 자녀들의 빈 여백의 시간과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 보아주길 바랄 뿐이다. 이 아이들의 즐거움과 휴식의 실체를 접하면 접할수록 우리 어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멋진 신세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실체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머리가 아득할 정도로 상황은 더 어렵다.

자녀들에게 당장 물어보라. 고통과 피로와 삶의 무기력이 찾아올 때 무엇으로 위로를 얻고 무엇으로 마음의 회복을 얻고 있는지.

학생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무엇으로 휴식을 취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위로인지 교사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가끔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거나 학생들이 소개해 주는 가수나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면 당혹감을 숨길 수 없다.

수업 자투리 시간에 어리바리한 교사인 나를 시험해보려 학생들이 가끔 어른들은 모를 법한 세계의 문을 조금씩 열고 보여주는데, 그들끼리만 공유하는 재밌는 동영상이나 인기 유튜버의 세계는 몹시 충격이다. 욕설이 반이고 우리말은 조사와 이어주는 말 정도인 언어세계와 학생들은 낄낄거리지만, 그 안의 대화내용은 나와 같은 꼰대 교사에게는 허용범위를 넘어선 세계다.

학생들은 충격받는 나의 표정을 즐거워하기도 하고, 어디까지 선생님이 받아줄까를 가늠해보려는 흥미진진한 눈빛을 하고 있다. 애써 쿨하게 수용하는 척하기보다는 결국 나의 고급문화로 너희들을 삼켜버리겠다는 웃기고도 슬픈 표정이 나온다. 결국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상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각오로 더 알찬 수업을 해나갈 것을 다짐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어린 시절부터 겪어야하는 과한 피로와 지친 몸과 마음은 어디서 안식을 얻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가 교사로서 요즘 나의 화두이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동네 독서실이 엄청난 호황을 이룬다. 학생들 말에 따르면 좌석은 매진인데 평소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독서실에서도 못 쉬어 하는 수 없이 비싼 돈 내고 집밖을 떠도는 아이들이 참 많다. 이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고등학생인 아들이 토요일에 반 친구들과 모처럼 놀았다고 하기에 기특해서 뭐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니, 부대찌개 먹고 피시방 갔다고 한다. 비가 와서 축구는 못 하고 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고, 여러 명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카페와 노래방이나 이 시꺼먼 남학생들이 갈 곳으로 적합하지 않다. 유일하게 갈 수 있는 저렴한 공간은 피시방이나 찜질방이고 그것이 놀이이고 호사인 우리 아이들이다.

돈이 없어도 갈 수 있는 청소년들의 쉴 터와 놀 터가 거의 전무한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성장의 고통, 건강한 고통을 이겨내는 쉼으로 무엇을 암묵적으로 이 사회는 제공하고 있으며, 비의도적으로나마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소마’를 강제로 먹이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늘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쉼을 주어야하는가

그렇다면 학생들의 참된 쉼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지금 이 순간 제멋대로 살아라, 한번 사는 인생이잖아’ 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한도에서의 무한 자본과 쾌락으로 언젠가 이룰 절대 쾌락만을 쉼이라고 학습하는 현실을 인정하자. 그것만을 쉼으로 우리가 제공하고 있음을 인정하자. 그럼에도 그것이 싫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쉼을 주고 싶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쉼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지 진지하게 답하고 실천해야 한다.

가장 먼저 가정이 쉼이 되길 바란다.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 가시방석인 아이들이 너무 많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 책상에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느라 굳고 딱딱해진 허리를 침대에 편히 눕힐 수 있도록 따뜻한 표정으로, 따뜻한 눈빛으로 맞아주는 부모님이라는 포근함이 있는 가정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쉼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넘고 있는 고통의 여정, 넘어야 할 인생의 고통에서 부모님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 ‘다시 도전할 힘이 생겨’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오로지 ‘부모’, ‘가정’이라는 쉼을 주는 어른들이 되길 바란다.

둘째로, 학생들이 하는 과제, 숙제가 쉼이 되어야 한다.

친구들과 진지한 주제로 학창시절 내내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해 본 적 없다는 대답을 고3들에게 들으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대학을 가건, 취직하건, 자기 생각을 말하고 거절하고 부탁하고 협의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사회적 기술인데, 그런 적 없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면 우리 학생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는 사회적 기술을 배울 수 있는지 국어교사로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친구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해 보는 경험이 쉼이 되어야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적 의미를 담아낸 과제와 수업 중 활동이 많은데 이는 성장에 필요한 건강한 고통이기도 하고, 최고의 쉼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소통해 나의 생각을 바꾸어 가는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하며 자란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자 쉼의 도구를 인생에 탑재한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과제와 자신의 열정을 담은 심도 있는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경험 그 자체가 쉼이어야 한다. 친구들이라는 최고의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건강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어른들은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구조적으로 학생들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쉼터 공간과 재정 지원이 정책을 세워 우선순위에 두고 실행해야 한다.

청소년 문화센터가 얼마나 희귀한지 모른다. 학생들만의 공간을 주변에서 찾아보면 절망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멋진 카페, 세련된 식당, 운동센터, 실내 골프장, 키즈 카페, 스포츠센터 등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심지어 어린 아기들도 갈 곳이 있는데 우리 학생들만 갈 곳이 없다. 아이들이 가는 공간은 학원들이 즐비한 거리와 그 사이의 분식집, 학교에서 학원으로 가는 중간 한 끼를 때우는 식당, 스터디카페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이 친구들과 쉼을 누릴 공간적 여유가 이렇게 인색한 선진국이 어디 있을까. 오로지 학원가가 아이들의 쉼터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고문이다.

“시험 끝났다, 쉬자”라고 했을 때 갈 수 있는 건강한 쉼터를 만들어 놓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탁구도 치고 보드게임도 하고 저렴한 가격의 간식도 먹고,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언제라도 만나 차 마시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 언제라도 함께 뛰어 놀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어른이나 아이나 가정에서 쉬는 것이 가장 행복해야 정상인 사회이다. 어른들은 일찍 집으로 들어가 포근한 가정을 준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가정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따듯한 대화를 하고 서로 어루만지고 포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쉼이다. 그런 쉼을 누린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쉼을 나누는 그런 기특한 사례를 많이 보아서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삶을 찬찬히 관찰하고 그들의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지하는, 참된 위로와 쉼을 준비해 두는 지혜로운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개인과 가정의 몫으로 미뤄둔 주요하고 시급한 문제에 우리 사회가 예민하게 반응하기 바란다. 보이지 않는 고통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어른들이 많아져 정부의 청소년 정책을 주목하는 데 관심 갖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너나 할 것 없이 위로가 필요하다고 저마다 아우성치는 시대에 약자인 듯 약자 아닌, 이 세대의 주인공인 듯 주인공이 아닌,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어른, 부모, 교사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금은 더 따스하고,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청소년들로 가득한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지금을 사는 이 사회와 어른의 삶이 아이들에게 그런 세상이 올 가능성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멋진 신세계’가 차용한 세익스피어의 구절처럼 이 사회가 참으로 ‘훌륭한 피조물! 아름다운 인간!’들이 사는 곳이어서 감탄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O wonder!
How many goodly creatures are there here!
How beauteous mankind is! O brave new world,
That has such people in't.

오 놀라워라!
이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라니!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워라!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

-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제5막 1장

함은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용인 신봉고 교사와 아들
함은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위원, 경기 용인 신봉고 교사와 아들

■ 연재 예정 순서=1. 교육법으로 알아보는 마일리지승진제/ 2. 극한직업: '학폭' 담당 교사의 삶/ 3. 현장교사 없는 교육과정: 이대로 표류해야하나/ 4. 미래사회는 어떤 아이들을 원하는가/ 5.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정치 배제를 말하는가/ 6. 상상을 더하는 학교 공동체 & 학교 교육과정/ 7. 교사의 행정업무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 8.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늘의 교육/ 9. 누구를 위한 특별교부금인가/ 10. 흔들리는 입시-어디로 가야 하나/ 11.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