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에세이] 나의 이야기는 멋진 시가 될거야..."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그림책 에세이] 나의 이야기는 멋진 시가 될거야..."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 김지민 서울 미래초 교사
  • 승인 2020.11.22 12: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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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그림책에 녹아 든 인간의 삶을 어떤 모습일까. 교사 등 교육자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 그림책은 어떤 통찰을 전해줄까. <에듀인뉴스>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들의 모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와 함께 그림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김지민 서울 미래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김지민 서울 미래초 교사/ '좋아서하는그림책연구회' 운영진

[에듀인뉴스] “선생님, 현우 진짜 잘 썼어요!”

흥분된 목소리가 나에게 들려온 건 어느 과학 시간이었다. 그날은 특별히 가루들이 용해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시를 쓰고 있었다. 현우는 수줍지만 자신감에 찬 미소를 띠며 완성한 시를 내밀었다. 그와 같은 모둠 아이들은 “역시 현우는 무엇이든 잘해”라며 덩달아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나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사각사각 소금나라, 달콤달콤 설탕나라...물과 하나가 되어 사이좋게 지내요.’


잘 꾸며진 문장들에 다정한 교훈을 담은 시가 아기자기한 그림과 함께 또박또박하게 쓰여 있었다. 아이들이 감탄한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나는 씁쓸해졌다. 이 예쁜 글에는 정작 현우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내 유년 시절의 글을 보는 듯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나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싶어 애탔고, 책을 읽으면 나만의 해석들을 신나게 펼치던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랬던 나는 중학교 문학 수업 중 ‘허생전’에 대해 질문을 하던, 그 순간을 기점으로 변하였다.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면 되잖아.”

문학선생님의 차가운 한 마디에 글 속 구절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른 의견을 펼치던 나의 입이 꾹 닫혀버렸다.

시린 침묵 속에서 ‘나의 생각이 이상한가?’ 하는 무서운 의심이 내 마음 속에 땅을 파기 시작했고 ‘겁’이란 지독한 씨앗을 심었다.

그때부터 상대방의 반응이 두려워 나의 진짜 이야기는 일단 숨기고 대신 그럴듯한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표지.(안 에르보 저, 한울림어린이. 2017)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표지.(안 에르보 저, 한울림어린이. 2017)

내 눈앞의 이 맑은 아이는 스스럼없이 자신 이야기를 꺼내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 어떤 말을 해주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움츠러든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주었던 그림책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안 에르보)가 떠올랐다.

그림책은 ‘브루’라는 한 소년이 아끼던 길고양이가 사라져 깊은 슬픔에 빠지며 시작된다. 그런데 만나는 이들마다 위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겨우 길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슬퍼하냐며 그를 타박한다. 결국 브루도 예전의 나처럼 움츠려든다. 그런 브루에게 개 한 마리가 다가온다. 나는 나를 꺼내기 두려울 때면 이 브루와 개의 대화를 소리 내어 읽곤 했다.


“사실은 슬퍼. 고양이가 사라졌거든...”

“응, 그랬구나.”

“하지만 세상에는 훨씬 더 슬픈 일들이 많아.”

“그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네 고양이에 대해 얘기해 줘. 다정한 너와 길들여지지 고양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널리 퍼져 나갈 거야.”


개의 말을 되뇌이며 현우의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건네주었다.


“현우야, 정말 다정한 시를 썼구나. 그런데 너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줄래?”

“제 이야기는 별거 없어요.”

“괜찮아. 어떤 이야기더라도 너의 이야기라면 근사한 시가 될거야.”


그 다음 과학 시간, 현우는 슬그머니 다가와 반듯하게 접은 종이 한 장 내밀었다. 지난번 보다 더 수줍은 얼굴로 건네준 종이에는 아이의 진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용기를 낸 아이가 대견스러웠고 그 여린 마음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사진=김지민 교사)
(사진=김지민 교사)

< 운명 >

설탕은 언젠간 녹고/ 물은 언젠간 증발하고/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잠을 자다가 어머니 숨소리 체크하는 나/

언제 죽을까 겁이나 잠을 설친다/ 차라리 언제인지 알려줬으면.


담담한 목소리로 읽어가는 현우의 시를 다른 아이들도 숨죽여 들었다. 몇몇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나의 진짜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근사한 시가 된다.’ 그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나 또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현우의 시를 읽으며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한다. 그리고 이젠 나도 움츠렸던 유년의 기억에서 벗어나 나의 진짜 시를 써보려 한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으로 삶을 탐구하는 교사 모임이다. '아이들 곁에서 교사도 창작하는 삶을 살자'는 철학을 가지고 9명의 교사 운영진이 매주 모여서 그림책을 연구한다. 한 달에 한 번 오픈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화두를 던지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김지민 서울 미래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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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진 2020-11-30 12:54:58
현우가 쓴 시를 읽고 자기 목소리로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우가 쓴 자기의 이야기가 몇 줄의 시가 되면서 현우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읽는 순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시로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