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검사는 인권침해라는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에듀인뉴스] ‘거침없이 교육’은 ‘나’의 입장에서 본 ‘교육’을 ‘거침없이’ 쓸 예정이다. 글은 자기중심적이고 편파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글 중에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편파적이지 않은 글이 얼마나 될까? 객관적인 척 포장할 뿐이다. 차라리 나의 편파성을 공개하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 잘 될까 모르겠다. 다루는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거라면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쓴 교육제도, 교육정책, 교육담론, 교실 이야기 등에 나의 편파성을 실어 나르리라.

책 '인권수업-교실, 인권을 만나다!' 표지 일부.(이은진, 지식프레임, 2018)
책 '인권수업-교실, 인권을 만나다!' 표지 일부.(이은진, 지식프레임, 2018)

<인권수업-교실, 인권을 만나다!>(지식프레임, 2018)에서 이은진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기는 겪은 일, 생각, 감정을 오롯이 담아놓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입니다. 개인의 사적 기록물에 대한 권한은 작성자에게 있습니다. 작성자의 자유 의지에 반하여 내용을 공개하게 하거나 타인이 그 내용을 보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지요. 일기 검사가 아무리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하더라도 ‘검사’를 한다는 것 자체로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17조는 다음과 같이 사생활의 비밀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중략)‘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일기검사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라는 취지의 결정서를 발표한 이후, 선생님들은 불만은 있을지언정, 대체적으로 그 큰 틀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 같다(적어도 마지못해서라도, 인정한다).

인권과 인권교육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이은진 선생님의 글 또한 일기 검사는 인권침해라는 기존의 인식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나는 일기 검사는 인권 침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검사’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 단어는 마땅히 ‘일기 쓰기 지도’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논의를 위해 일단은 ‘검사’라는 단어를 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나 이은진 선생님의 글에도 나와 있듯, 일기 검사와 관련해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부분은, 그것이 학생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느냐 여부다. 침해한다면 인권침해요, 침해하지 않는다면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일기 검사가 생활지도와 글쓰기 지도 면에서 무수한 장점이 있지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 등의 인권침해 요소가 있음에도 일기 검사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무수히 많은 장점에도 인권침해 요소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제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권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인권은 소중하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일기 검사에는 인권침해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기 검사를 한다고 해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호하게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이 사람들은 의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인권침해가 아닌 이유는 생각보다 분명하고 명확하다.

사람들이 일기 검사가 인권침해라고 잘못 생각하는 까닭은, ‘일기’라는 단어의 개념상 혼동과 관련이 있다.

위 이은진 선생님의 말마따나 “일기는 겪은 일, 생각, 감정을 오롯이 담아놓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이다. 따라서 일기는,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쓰여 진다. 본래적 의미의 일기는 그렇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학교에서 작성하는 일기는 어떤가?


학교에서의 일기는, 적어도 선생님이 보는 것을 전제로 쓰게 된다. 선생님에게만은 공개되는 글이다. 그러다 보니 내밀한 고백의 글쓰기인, 본래적 의미의 일기와는 다르다.

학교에서 쓰는 일기는, 다시 말하지만 본래적 의미의 일기는 아니며, 다르게 표현하자면, ‘생활글’ 정도가 될 것이다.

본래적 의미의 ‘일기’와 학교에서 쓰는 일기인 ‘생활글’이 정말 차이가 없다고 보는가? 명확한 차이가 있다.

본래적 의미의 ‘일기’는 선생님을 포함해 다른 이에게 공개하지 않는 걸 전제로 쓰지만, 학교 일기인 ‘생활글’은 적어도 선생님한테는 공개하는 걸 의식하며 쓴다.

그것은 일종의 과제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일기(생활글) 써오기’를 과제로 내주고, 선생님은 그 과제를 ‘검사’하는 것이다.

여느 과제를 검사하는 것과 넓은 관점에서 보면 크게 차이가 없다. ‘수학익힘책 풀어오기’ 과제를 내주고 검사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강제로 써오게 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과제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수반된다.

해오지 않았다고 해서 체벌을 하거나 그 외 신체적, 수치심을 주는 벌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과제를 내 준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수학익힘책 풀기’ 과제를 내주고 그 결과물을 검사하여 채점하는 것을 가지고, ‘왜 강제로 수학익힘책을 풀어오라고 하느냐’ 또는 ‘왜 아이가 사적으로 풀어온 것을 확인하고 검사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은 없다.

일기 검사가 인권침해가 되려면 이런 상황이어야 한다.

즉, 아이가 학교 과제로 일기를 쓴 게 아니라, 애초부터 아무에게도 공개할 생각이 없었던 나만의 ‘진짜 일기’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일기 지도를 하겠다고 강제로 빼앗고 그 ‘진짜 일기’를 읽었다고 치자.

이런 상황은 명백히 아이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는 애초부터 공개할 의지와 생각이 없었는데 억지로 공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도 보자.

평소 학교 일기(생활글)는 선생님한테만 공개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쓴다. 그리하여 아이는 학교 일기(생활글)에 선생님만 보라고 나름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비밀 일기를 아이의 동의도 받지 않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이 또한 아이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 글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는데 공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차이가 보이는가?

학교 일기(생활글)는, 애초부터 선생님에게는 공개할 것을 전제로 하고 쓰기에 그 글을 선생님만 본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학교 일기(생활글)가 문제된다면, 국어 교과서 또한 문제며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

2020년 현재 5학년 2학기 국어㉮ ‘4.겪은 일을 써요’ 단원에는 ‘겪은 일이 드러나게 글 쓰기’ 부분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기에도 보통 내가 겪은 일을 쓴다. 관련 단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실상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짝과 글을 바꾸어 읽고 의견을 주고받는 부분까지 나오는데, 이거야 말로 완벽한 인권 침해 아닌가? 내 글을 왜 다른 친구와 바꾸어 읽으라고 하는가? 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하지만 위 교과서의 상황이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안다. 왜냐하면 그 글쓰기 과정이 애초에 다른 친구에게 공개할 것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는, 아이가 글을 공개할 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일기’라는 단어에 함몰 돼, 뭐가 인권 침해인지 지금까지 다들 헷갈려 하면서, 애꿎은 곳에 인권침해의 낙인을 찍어 왔다.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의 한재경 선생님(고양 내유초)을 따라, 나는 학급에서 ‘마음공책’이라는 것을 쓴다. 솔직히 말해, 기존 ‘일기’라고 불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내가 겪거나 인상 깊었던 일을 쓴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다.

물론 다른 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이들의 글을 모두와 나눈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글 하나하나를 담임교사인 내가 다른 아이들 앞에서 읽어준다.

이런, 대체 무슨 큰 일 날 일인가? 인권 침해도 이런 인권 침해가 있나?

하지만 뭐가 인권침해인지,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읽히길 원하지 않는 아이들은 글에 ‘비밀’이라고 써 놓으라고 하고, 그 아이들 글은 절대 읽어주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읽어줘도 괜찮다고 한 아이들 글만 읽는다.

이렇게 글 나눔을 하면 어떨 것 같은가? 아이들이 부끄러워서 점점 ‘비밀글’을 많이 쓸 것 같은가? 아니다. 되려, ‘비밀’을 써 놓은 아이들 수가 줄고, 읽어주길 바라는 아이들 수가 거의 대부분이 된다.

아이들은 내 글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 순간 그 아이의 눈은 초롱초롱해 진다. 다른 아이들 또한 우리 반 또래의 이야기이니 귀 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서로 공감하며 울고 웃는다.

어떤 아이가 라면을 먹었다는 이야기에선, 어떤 라면을 먹었는지 궁금해 하며 다들 내가 좋아하는 라면을 이야기하기 바쁘다.

어떤 아이가 집에서 공부 안 한다고 혼난 이야기에서 너도 나도 부모님께 혼난 이야기하기 바쁘다. 삶을 나누고, 삶을 가꾼다.

이게 정녕 인권침해인가?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곽노근 경기 파주 적암초등학교 교사. "파주 깊은 산골 적암초에서 근무하고 있고, 초등토론교육연구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좇아 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잘 되지 않음을 느낀다. 삶과 계급과 교육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되,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