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돌아보기] (하) A, B, C도 모르는데요
[교단 돌아보기] (하) A, B, C도 모르는데요
  • 지준호 기자
  • 승인 2018.06.28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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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도 늘푸른나무학교 교장, 前 언주중학교 교장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아쉬운 일도 많았고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 아쉬운 일들 중에서 대부분은, 늘 실천해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처 시도도 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한편, 보람 있었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서는 기초 학력을 확실하게 잡아주려고 심혈을 기울이던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현실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어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루지 않고 통지표에도 기재되지 않으니, 생활에 쫓기다 보면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가 아니라면 자녀의 영어 수준을 모르기 십상이다.

중학교에 올라오면 시험을 본다. 그에 따라 성적도 나온다. 그러나 단 한 과목이라도 0점을 받는 학생은 거의 없다. 수행평가에서 기본 점수가 부여되고, 지필고사에서도 선택형 문제의 찍기 점수(?)가 있으니 최하의 수준이라 하여도 30~40점은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통지표를 살펴본다 해도 자기 자녀가 영어 알파벳도 모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 뒤쳐진 학생이 다시 배울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동네의 보습학원에서도 알파벳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다. 학생 본인도 창피한지 어디에다,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그래도 중학교 입학하는 데 지장 없고, 고등학교는 입학은 물론이고, 잘만하면 대학 졸업까지도 가능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편,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개인차가 크게 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 차이는 국어나 도덕, 사회, 과학도 그렇지만 특히 수학과 영어에서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개인차가 큰 수학과 영어 교과에서만큼은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여 수업을 실시해왔다.

수준별반은 통상적으로 상, 중, 하 3수준으로 나누는데, 이 때 문제되는 반이 ‘하반’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체면 때문에 ‘하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고,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수업하기 힘든 ‘하반’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래저래 ‘하반’은 기피 대상이다.

상, 중, 하의 각반 내에서도 또 수준차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또 수준차가 심한 반이 바로 ‘하반’이다. ‘하반’에는 그야말로 까막눈에서부터 ‘중반’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수준의 학생들까지 있어 ‘하반’ 내의 격차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래서 ‘하반’을 맡은 교사들은 지도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위 ‘부진아반’은 학교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관악 모닝 아카데미’의 시작

드디어 기다리던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다. 영어 성적 하위 10%의 학생을 특별보충수업 대상자로 하였다. 1학년과 2학년에서 각각 20명이 조금 넘었다. 담임교사들을 교감과 함께 회의실에서 만났다. ‘마트의 화장품 코너’와 ‘편의점의 담배’ 얘기를 먼저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음의 사항에 주안점을 두어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담하고 설득하면 좋겠다고 담임교사들에게 강조하였다.

첫째, 강요하지 말고 학생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둘 것

둘째, 영어 단어도 못 읽으면 마트 취직도 못한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할 것

셋째,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

수업에 참가할 대상을 설득하는 과정에는 교장인 나도 참여하였다. 우리 모두는 대개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일수록 성적에 대한 고민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전교 순위권 내에 드는 학생들이지 가장 하위권에 위치한 학생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알게 된 것은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일수록 성적 고민이 더 크다는 것이다.

성적이 가장 하위권인 학생들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앞으로 살아갈 일을 더 심각하게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정말 많이 걱정 됩니다”라는 말을 그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들의 이런 큰 걱정거리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없이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을 먼저 면담하고 이어서 학부모를 면담하는 순으로 하였다. 자기 자녀의 영어 수준이 그렇게까지 나쁜 줄을 미처 모르고 있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분은 기가 막혀서 입을 떼지 못하는가 하면, 눈물을 글썽이는 분도 있었다.

권유하고 설득한 결과 1학년에서 20명, 2학년에서 18명의 학생이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설득할 묘안을 찾지 못해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관악 모닝 아카데미’가 드디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0교시’(08:00~08:45)에 45분씩 1주일에 2회(1학년 월, 목; 2학년 화, 금), 10주간 총 20회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게 서당식으로 진도를 각각 달리 하였다.

알파벳을 익히는 학생, 단어 읽기를 하는 학생, 문장을 조금씩 읽는 학생 등……. ‘파닉스(Phonics)’를 주교재로 하여 수업 자료를 수준별로, 단계별로 다르게 제작하였다.

첫 수업을 앞두고서 사실은 걱정이 좀 되었다. 평소에 워낙 말썽만 부리던 녀석들이 갑자기 아침 일찍부터 책상에 앉아 있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몇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제 시간에 맞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눠준 교재를 이리저리 들춰보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10월부터 시작한 ‘관악 모닝 아카데미’는 11월이 되어 점차 열기가 높아졌다. 1, 2학년 모두 지각이나 결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출석률이 매우 높았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고 머뭇거리기도 하였으나, 알파벳을 알게 되고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되자 점차 흥미를 가졌다. 자신감이 붙자 소리 내서 읽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모든 일에서도 대체로 그러하듯이, 기초 학력이 부족한 채로 방치된 학생들은 대체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런 학생들은 대부분 아침밥을 거의 거른 채로 학교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관악 모닝 아카데미’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위해 간단한 요기 거리를 제공하였다. 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을 먹는 재미도 무시하지 못할 유인책이 되기도 하였다.

기말고사 기간 동안 2주를 쉬고서 ‘관악 모닝 아카데미’를 다시 시작하였다. 12월이 되자 추위가 몰려왔다. 겨울 추위가 그렇게 혹독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된 해도 드물었다.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아침이 2주 이상 계속되었다. 그런 날씨에도 학생들은 꿋꿋이 잘도 나왔다. 드디어 마지막 주가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포기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고맙다

2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열심히 참여한 만큼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1학년은 20명 모두가 빠지지 않고 잘 나와 주었는데, 2학년은 1명이 탈락하고 꾸준히 나온 학생은 17명이었다. 1, 2학년 모두가 영어 단어를 읽는 것은 물론이고 문장을 읽고 쓰며 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되었다. 그날따라 학생들은 물론이고 지도 교사 또한 평소보다도 더 열심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 간의 일이 스쳐갔다. 나도 몰래 가슴 속에서부터 뿌듯한 기분이 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렵게 시작된 ‘관악 모닝 아카데미’는 학생들의 간절한 요구에 방학하는 날까지 2주간을 더 진행하여 결국 24차시로 마감하였다. 그 이후 ‘관악 모닝 아카데미’는 기초학력 부진학생 지도 프로그램으로 학교교육계획에 포함하여 편성하였고, 매년 1학기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아쉬운 일도 많았고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 아쉬운 일들 중에서 대부분은, 늘 실천해보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처 시도도 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한편, 보람 있었다고 생각하는 일 중에서는 기초 학력을 확실하게 잡아주려고 심혈을 기울이던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관악 모닝 아카데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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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준호 기자  casaji97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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