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노트] 학폭도 '절충안'으로? 숙려제 이제 그만 합시다
[취재노트] 학폭도 '절충안'으로? 숙려제 이제 그만 합시다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9.01.2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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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학교폭력 공익광고 유튜브 캡처

[에듀인뉴스=한치원 기자] 학교폭력(학폭) 제도개선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교육부가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지난해 11월 정책숙려제에 들어 간 교육부는 학교폭력 처리절차 개선방안 발표를 당초 계획보다 한 달여 늦은 이달 말로 늦췄다. 

학폭은 그 자체가 지닌 특성상 바라보는 관점부터 처리절차 등에 관한 의견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답을 찾기 어려운 과제다. 따라서 교육부가 어떤 결과를 발표해도 논란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쟁점은 두 가지다. △경미한 학폭을 당한 피해학생과 학부가 원치 않을 경우 학교장이 학폭위를 열지 않고 자체 종결할 수 있는 ‘교장 자체 종결제’ 도입 △가해학생에게 서면사과나 접근금지, 교내봉사 등 경미한 처벌이 내려진 경우 이를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는 ‘학생부 미기재 방안’ 등이다. 

그러나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문가와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민 의견 차이가 심해 교육부를 당황하게 한 모양이다. 현장을 포함한 이른바 전문가 집단은 찬성하고, 학부모와 국민 여론은 반대 의견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이 학교와 교원의 교육적 지도나 회복적 조정을 원천 봉쇄한다며 ‘학교장 종결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다. 

본질적으로 형사사건인 학교폭력에 대해 비전문가인 교원, 학부모 중심으로 구성한 학폭위에서 처분 결정을 내리면서 가·피해자 모두 불만이 가중되고, 재심 청구나 담당교원에 대한 민원·소송, 징계 요구 등이 빈발해 학교의 정상적 교육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 초·중·고교의 학폭위 심의 건수는 2015학년도 1만9830건, 2016학년도 2만3466건, 2017학년도 3만993건으로, 불복 재심건수도 2015년 979건, 2016년 1299건, 지난해 1868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학폭위 처분 관련 행정소송도 10건 중 4건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등 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교총은 전국 초·중학교의 41%가 학폭위 구성 자체가 힘든 60명 이하 소규모 학교라며 학폭위의 교육청 이관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학폭 가해 사실의 학생부 기재가 실제로 학폭 예방효과가 있는데, 경미한 학폭이라고 기재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학교가 사건을 축소·은폐하다 적발되면 학교장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학생부도 학폭법 제17조(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제1항 1~3호에 한해 ‘미기재’가 아닌 ‘기재보류’로 하되, 기재보류는 졸업 때까지 학폭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면 학생부에 미기재하자고 제안한다.

물론 세부적인 쟁점은 더 많다. 경미한 학폭의 기준을 명확히 어떻게 정할 것인지, 학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것이 학폭을 예방하고 교육적으로 맞는 방법인지, 학생부에 미기재하는 것이 학폭 피해자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는 일인지, ‘학교장 종결제’ 도입 주장이 일선 교원들의 업무와 책임을 회피하자는 측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현행 제도를 해석하는 방법과 실행 방식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논의할 사안이 부지기수다.  

결국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두고 교육부가 숙려제를 통해 방안을 찾겠다고 나선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정책을 여론을 기준으로(또는 여론을 우선해) 결정하는 방식은 온당치 않다. 교육은, 또 교육과 관련한 교육정책은 고도의 전문성과 현장성, 그리고 학교와 교사의 의견과 요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반영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책 수요자가 외면하는 정책 공급자 중심의 사고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교육정책에 잘못 적용하면,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논리로 교육문제를 왜곡·변질시킬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교육부가 도입한 두 건의 숙려제와 공론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교육부는 지난해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개선방안과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방안에 관해 정책숙려제와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엄청난 혼란과 갈등, 정책불신을 초래했다. 그런데도 ‘또’ 학폭 제도개선 숙려제 카드를 꺼냈고, 이번에도 전문가 의견과 국민여론은 달랐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29건의 학폭법 개정안이 숙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학교도 새 학기를 앞두고 교육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교육부에 바란다. 교육정책을 뺑뺑이 돌리다 어정쩡한 '절충안'을 내놓는 숙려제, 공론화는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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