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선의 수업나눔] '역설'과 '반어'...'고등래퍼' 통해 배워볼까?
[유희선의 수업나눔] '역설'과 '반어'...'고등래퍼' 통해 배워볼까?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7.19 11: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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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선 경기 양오중학교 수석교사

랩과 영화 등 통해 표현 방법 배우는 살아 있는 국어 수업

수업친구와의 수업나눔은 내 수업을 거울로 비춰보는 작업이다. 수업친구는 내 수업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지대이며, 나의 수업고민을 깊이 성찰해주고 함께 성장해가는 제일 가까운 수업코치다. 수업자의 시선으로 수업을 바라봐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업나눔의 기회를 수업성장의 디딤돌로 삼으려면 의미있는 장면을 놓치지 않는 수업보기의 안목과 진정성 있는 수업친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에서는 더 좋은 수업을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를 응원하고,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을 위해 ‘유희선의 수업 나눔’을 기획했다.

Mnet 에서 방송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출연한 김하온, 이병재가 한 팀이 되어 랩 '바코드'를 만들었다.(이미지=Mnet)
Mnet 방송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출연한 김하온, 이병재가 한 팀이 되어 랩 '바코드'를 만들었다.(이미지=Mnet)

[에듀인뉴스] 화성에 있는 A중학교의 국어과 수업나눔 진행을 제안 받았다. 거리상 멀리 떨어진 곳이기도 하지만 바쁜 학교 일정 때문에 간혹 수업 동영상을 받아보고 수업나눔에 임할 때도 있다. 교사와 학생 상호작용을 한 눈에 관찰할 수는 없지만 화면에 잡힌 장면과 목소리를 통해 수업의 흐름을 파악하고 궁금한 지점은 되돌려가며 다시 볼 수 있어서 수업동영상 촬영은 수업나눔이나 수업코칭에 매우 유의미한 장치다.

수업동영상을 받을 때는 선생님의 교수학습 과정안과 수업고민지를 함께 받기 때문에 사전에 선생님 수업에서 깊이 봐드려야 할 관전 포인트를 염두에 두고 수업을 보게 된다.

수업 재료는 생활 속에서...'아이들의 눈높이로 다가가는 노력'

이번 수업은 ‘일상 언어 속 역설적 표현 찾아보기’가 주제인 수업이었고, 선생님은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역설의 개념과 효과를 이해하고 생활 속에 사용된 역설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영상자료를 준비해 정성들여 수업을 설계하였다.

지난 시간에 배운 ‘먼 후일’이라는 시를 복습하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운율의 반복을 이해하기 위해 래퍼 우원재의 ‘시차’, 고등래퍼에 나왔던 ‘바코드’, 속사포 래퍼로 알려진 아웃사이더의 ‘외톨이’ 등 학생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등장했고 선생님은 태연하게 몇 소절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며 학생들의 호응을 유도하셨다.

‘아! 학생들 눈높이로 다가가는 노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선생님은 벌써 이번 시간에 배울 ‘반어’의 개념을 다루기 위해 영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한때 많이 들어봤던 UV의 ‘이태원 프리덤’이 흘러나오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것을 물으셨다.

‘배달하는 집배원, 물건파는 판매원, 기타치는 김태원, 모두모여 이태원~~♬’

글자의 반복과 문장구조의 반복을 즉석에서 학생들과 소통하고 계셨다. ‘살아있는 수업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또 깨닫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이어서 ‘반어’라는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영화 ‘건축학 개론’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남학생과 여학생을 차례로 지목해서 대사를 읽어보게 하셨다.

대화를 보고 반어적 표현의 특징을 찾게 하신 영화 ‘건축학 개론’의 한 장면
대화를 보고 반어적 표현의 특징을 찾게 하신 영화 ‘건축학 개론’의 한 장면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빈정대는 남자 주인공한테 ‘너, 말 참 예쁘게 한다’라고 표현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너, 말을 참 기분 나쁘게 한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그 말을 할 땐 입꼬리라도 씰룩거리며 해야 한다고 연기까지 덤으로 보여주셨다.

이번 시간에 배울 詩 ‘독은 아름답다’에서 다루게 될 표현 방법은 ‘역설’이다. 선생님은 3가지 영상의 공통점을 찾아내보라고 하셨다.

첫 번째는 크레타섬 사람의 패러독스였다. 크레타섬에 사는 주민이 섬 밖으로 나와서 “크레타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고 하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할까? 그 말을 한 사람도 크레타섬 사람이므로 거짓말쟁이일테니까.

두 번째는 ‘1초의 찡그림이 가장 아름다운 표정’이라는 헌혈 공익광고다.

세 번째는 영화 ‘써니’에서 주인공이 친구에게 ‘잘 살 때까지 못살게 굴겠다’는 우정어린 충고를 해주는 부분이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모두 겉보기에는 모순되어 있지만 그 속에 진심이 담긴 말이다.

선생님은 생활 속 사례를 찾아주기 위해 ‘Sound of Silence’를 배경음악으로 삼은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영상을 더 보여주셨다. ‘침묵 소리’라는 노래 제목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엄청난 충격을 당한 이들에게 마음으로 눈빛으로 위로해줄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또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보여주셨다. 그 속엔 ‘차디찬 불’이라든지, ‘납덩이처럼 무거운 깃털’ 같은 글귀가 나온다. 선생님은 “셰익스피어가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표현을 썼을까?” 하고 물으셨다.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각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어서 선생님은 한용운의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뜻을 물으셨다. 학생들은 떠오르는 느낌대로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보내지 않았다”는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대립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충돌하면 그 의미가 강조된다고 설명해주시며 이런 사례는 시험문제에 나올 만큼 중요한 것이니 꼭 기억하라고 짚어주셨다.

역설 표현을 찾아라...'따로 또 같이' 임의 모둠 수업

수업이 시작된 지 20분쯤 되었을 때 선생님은 모둠별 미션이 담긴 봉투를 보이시며 모둠원끼리 가위 바위 보로 1, 2, 3, 4번을 정하라고 하셨다. 미션 봉투를 판도라의 상자라고 부르셨는데 봉투에서 꺼낸 활동지를 각각 1, 2, 3, 4번에게 나눠주시며 1번은 1번끼리, 2번은 2번끼리 등 같은 번호끼리 헤쳐 모이라고 하셨다.

1번만 4명이 앉은 테이블, 2번만 4명이 앉은 테이블. 3번만 4명이 앉은 테이블, 4번만 4명이 앉은 테이블이 두 그룹 만들어졌다. 이렇게 4인1조로 나뉜 8모둠의 학생들은 그 번호에 해당하는 생활 속 역설 표현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제한 시간 7분 동안 신문 기사, 노래 가사, 광고 문구 같은 내용을 통해서 밑줄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골라야 한다. 선생님은 모둠 사이를 순회하며 관찰하시다가 어려워서 주춤거리는 학생들을 다독이며 모둠활동에 참여시키셨다.

임의로 선택한 번호대로 모둠이 구성되다 보니 남학생과 여학생의 성비가 맞지 않아 여학생만 앉게 된 모둠도 생겼고, 남학생만 앉게 된 모둠도 생겼다. 하지만 이 모둠활동의 취지가 모둠원이 잠시 흩어져서 공부하고 다시 원래의 모둠으로 돌아와 배움을 합치고 공유하는 ‘따로 또 같이’ 스타일이라 모둠에서 성비의 불균형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1번끼리 모여서 탐구한 학생들은 신문기사에서 장애를 딛고 세계 속에 우뚝 선 인물을 일컬어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는 데 대한 역설적 표현을 찾아냈다. 2번끼리 모여서 탐구한 학생들은 바코드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어디에도 없으며 어디에도 있는 ‘행복’에 대해 우리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속뜻을 발견해냈다.

3번끼리 모여서 탐구한 학생들은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 의지하며 사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떨어지는 ‘호모스마트포누스’가 되는데 이를 ‘똑똑한 바보’라고 부른다는 역설적 표현을 제대로 끄집어냈다. 4번끼리 모여서 탐구한 학생들은 광고 문구 속에서 ‘쓸수록 늘어나는 카드’라는 말은 쓰면 쓸수록 돈을 버는 카드라는 역설을 담은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출장을 다녀온 학생들이 원래의 모둠으로 돌아와 의기양양하게 배운 것을 나누는 모습은 모둠활동을 통해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보여준 감동의 순간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역설적 표현의 사례를 찾아보고 표현 속 숨은 의미를 알아가는 모둠활동
일상생활에서 역설적 표현의 사례를 찾아보고 표현 속 숨은 의미를 알아가는 모둠활동

선생님은 수업 마무리에서 “역설을 왜 쓸까?”라고 학생들에게 물으셨다. 학생들은 “역설을 사용하면 왠지 있어 보이고 유식해 보인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일상생활에서 역설적인 표현을 쓰면 언어능력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감정을 강조하고 알듯 말듯 한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하며 의미를 충실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업을 고민하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학습 내용과 학생들의 관심을 잘 접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연구하고 계셨다. 또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까를 고민하며 다양한 수업방법을 찾고 계신다고 했다.

이번 수업도 학생들이 성장하며 실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은 국어교사로서의 신념이며 철학이 반영된 수업이라 더욱 열정적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지 않으셨나 싶다.

선생님과 수업을 나누러 가던 날, 교실 앞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손에 걸레를 들고 먼지를 닦아내며 학생들과 즐겁게 청소를 하고 계셨다.

청소 지도가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청소하는 선생님. 수업동영상에서 봤던 웃음이 많고 속사포 랩을 흥얼거리며 자연스럽게 격의없이 친절하게 다가가는 바로 그 선생님이셨다.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
유희선 경기 양오중 수석교사.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 연구회 부회장. 수업이 즐거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의 일체화(2018년) 공저자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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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9 21:21:14
언제나 옆에서 보는듯 세심한 수업 관찰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