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 제안] 2월 업무분장, 추첨할까요?
[에듀인 제안] 2월 업무분장, 추첨할까요?
  • 민천홍 춘천 남산초 교사
  • 승인 2020.02.12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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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간 의심과 갈등 낳는 2월 업무분장 시즌...
'과연 진짜로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인가?'

"추첨제 등 수평적 대화 실현할 다양한 장치 고민이 필요하다"

[에듀인뉴스] 2월은 학년과 업무가 정해지면서 새로운 만남과 시작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해야 할 시기지만, 한편으론 학년과 업무가 정해지는 과정에 대한 불합리함이나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들도 커지는 시기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추첨’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비공개로 각자가 원하는 학년(업무)을 적은 뒤, 공개적인 장소에서 추첨을 통해 학년이나 업무를 결정하면, 관리자나 인사위원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압력 행사 가능성을 원천차단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방식이 진정으로 타당한 과정인지를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사실 ‘추첨제’를 언급한 이유는 추첨 자체가 매우 타당해서가 아니라 추첨이라는 것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상황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바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

(사진=EBS 캡처)
(사진=EBS 캡처)

무지의 베일, 왜 필요한가

‘무지의 베일’은 미국의 철학자 룰즈(John Rawls)가 제안한 개념으로 구성원 모두가 베일 뒤 조건을 알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룰즈는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해서 개개인은 이득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입장(Original Position)에 놓이게 되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원칙을 채택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제일 어려운 것은 이런 ‘무지의 베일’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사실 학년과 업무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로 모여서 의논하는 2월, 학교 교사들의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무지의 베일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무지의 베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과연 진짜로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인가?’라는 의문 때문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새로 전입 왔거나 경력이 적다는 이유로, 혹은 관리자나 부장 교사와 관계가 좋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심지어 내가 희망한 학년에 다른 희망자가 없음에도) 원치 않는 학년을 배정받거나, 과도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또한 업무와 학년 결정을 위해 열린 인사관리위원회는 기존에 근무하던 몇몇 사람들의 이해관계나 관리자의 독단에 따른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일 구성원 사이에 ‘누군가는 이미 손을 써놨겠지’, ‘회의는 형식적인 과정일 뿐이야’라는 생각이 퍼져있다면 무지의 베일은 없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무지의 베일과 원초적 입장 활용하기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학년이나 업무 배정을 추첨을 통해 하기로 결정한다면, 추첨 이전의 상황은 개개인의 배경이 지워진 상태가 되어 무지의 베일이 씌워지고 원초적 입장과 가까운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진다.

이제 다음 과제는 ‘이 무지의 베일과 원초적 입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학부모 상담 업무가 일단 ‘김 아무개’ 교사에게 배정이 되면, 학부모 면담과 관련된 일이 학교 민원의 증가에 따라 관리자가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업무를 바꾸는 것은 ‘김 아무개’ 교사 개인이 주도할 문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어떤 업무에 대한 지원 인력을 채용하는 것,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을 지원하는 사안도 역할이 정해진 후 논의된다면 개인의 이익 챙기기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업무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그런 논의는 모두가 함께 논의하는 주제로 다뤄질 수 있다.

학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년별 특징에 따라 보조 인력 채용을 논의하거나, ‘~학년 교사는 ~~한 역할이 필요하다’라는 이야기, ‘OO 업무는 ~한 이유로 ~학년 교사가 맡아서는 안 된다’와 같은 논의도 더욱 열린 자세에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업무분장, "속도 보다 수평적이고 소통을 위한 장치와 노력 필요"

학교 업무 체계에는 아직도 부서별로 행사나 실적을 산출하던 시절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하지만 학교는 부서 실적과 행사를 위한 곳이 아닌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다.

결국, 2월의 교사들에게는 기존의 업무 분장표에 보이는 역할을 빨리 나눠 갖고 각자의 영역을 개인적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 업무 구조에 대한 변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평적 대화를 나누며, 함께 만들어갈 교육의 방향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천홍 춘천 남산초 교사
민천홍 춘천 남산초 교사

민천홍 춘천 남산초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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