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 성명서 일부.
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 성명서 일부.

[에듀인뉴스] 방과후학교 법제화에 대한 이야기로 갑론을박이다. 지난 5월 19일 교육부의 입법 예고와 이틀만의 철회라는 사건이 기름을 부었다. 

방과후학교 강사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 몇 년, 이러한 논쟁조차 없었던 과거에 비해 관심이 많아졌으니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까.

<에듀인뉴스> 6월 4일자에 실린 설진성 교사의 ‘코로나시대 학교너머’라는 칼럼에도 여러 가지 주장을 담았으나, 방과후학교 강사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고 사실에서 벗어난 점, 현실과 동떨어진 점도 있다. 

방과후학교를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의 비슷한 현장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으나,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니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학교의 할 일, 교육의 본질은 누가 정하는가


학교는 공교육을 하는 공공기관이다. 그리고 그 주인은 국민 모두다. 국민의 요구에 따라 공공기관의 위상과 역할은 변화해 왔다. 

공무원들만의 일터였던 동사무소도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라는 이름으로 변모하여 주민들의 소통과 나눔을 위한 공간이 되었고, 의료기관 관리 감독을 주로 하던 보건소도 감염병 예방이나 건강증진을 위한 홍보, 교육, 검진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전문성과 절차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기관을 이끌지만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서 해야 한다. 

전문가의 손에 방향까지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거나 경제적일 수는 있어도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반드시 올바른 길이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좌충우돌이나 비효율적인 과정이 있어도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학교의 무상급식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십여년 전 무상급식이 처음 시작될 때도 반대론자들은 ‘학교가 무료급식소냐’, ‘학교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시대와 국민의 요구가 있었기에 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조례도 만들고 예산도 배정하여 시행했고, 진통 끝에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다.

‘방과후학교는 교육이 아닌 복지의 영역이다’, ‘학교가 아닌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은 십여년 전의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다시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 교육의 본질, 학교의 고유 업무까지 거론한다. 교육의 본질이나 학교의 고유업무는 누가 정하는가?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라고 했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설치를 보건소 직원들이 반대하며 ‘보건소는 공중보건을, 병원은 진료를’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이라는 공공재의 ‘본질’ 또한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누군가의 뜻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 교육의 전문성을 중시한다고 해도, 공교육 기관의 교육권보다 수요자의 교육받을 권리가 우선함을 판시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도 있다.


교육과 복지의 경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교육과 복지의 경계를 명확히 나눌 수 있을까? 융합과 신재생을 이야기하는 21세기에 이걸 논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굳이 나누자면 방과후학교는 교육, 돌봄교실은 복지라는 범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교과수업에도 없고 학원에도 없는 방과후학교 교육을 일부러 찾아 듣는 학생과 학부모도 있지만 단순히 아이를 맡길 시간이 안 되어 하는 학부모도 있다. 

중요한 건 방과후학교도 돌봄교실도 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의 일정에 따라 수업을 하고, 학교라는 정체성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학교 안에서 발표회나 전시도 하고, 학교 이름으로 외부행사도 참여한다. 그런데 이것을 학교의 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일이다.

교사들도 교실 밖 교육, 교과를 넘어서는 교육을 많이 하고 있다. 자치활동, 계기수업, 현장학습, 체험학습, 혁신교육 등을 하고 있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교육, 진로탐색, 코칭수업 등도 하고, 학교 밖 마을교육공동체, 꿈의학교 등에서도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들을 교육이 아니라고 하지 않고, 복지와의 경계를 찾지도 않는다. 

그런데 방과후학교 이야기만 꺼내면 굳이 ‘분리’하려 들며 ‘교육이 아닌 복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이런 ‘내로남불’이 또 어디 있는가?

교사노동조합연맹은 "방과후학교-돌봄의 학교사무 입법안 절대 반대' 성명을 통해 네 가지 기준을 남겼다.(사진=교사노동조합연맹 포스터 일부 캡처)
교사노동조합연맹은 "방과후학교-돌봄의 학교사무 입법안 절대 반대' 성명을 통해 네 가지 기준을 남겼다.(사진=교사노동조합연맹 포스터 일부 캡처)

학교에 방과후학교와 같은 비교과 영역의 교육이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다. 

아동복지법, 청소년기본법에 있는 아동복지나 방과후 활동을 위한 내용들은 이러한 학교 안의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역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이나 상담센터 등에서 하는 일들이 이 법에 근거한다. 그러면 학교 안의 방과후학교를 위한 법도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아동복지법이나 청소년기본법에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있으니 방과후학교가 학교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학원법이 있고 학원에서 교과교육, 입시교육을 하고 있으니 학교의 교과수업도 학원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지역의 청소년기관을 가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 청소년수련관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청소년수련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유아와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일색이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할 만한 프로그램이 많지 않고, 중고생이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매우 적다. 

이것이 지자체들이 할 일을 하지 않아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지역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거나 강사로 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자체마다 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 집이 모두 있지도 않고, 프로그램이 유아와 성인 위주로 되어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저 수요가 그런 것이다. 

모든 청소년들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여년 전에도 필자는 지역 청소년수련관 강사로 활동하였고, 여기서 학교와 연계한 프로그램도 했고,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행사나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시도는 계속 있었으나 피드백과 확장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학교들도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를 주저하고, 그때마다 단기적 시도로 그치곤 했다. 

지금의 혁신교육지구, 마을교육공동체, 꿈의학교 등도 수요나 만족도, 프로그램의 질, 강사의 처우, 지속성 등에서 비판을 받고 계속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이 20여년 전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것을 방과후학교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지역 청소년기관의 이러한 시도가 방과후학교의 바람직한 대안이고 수요가 충분하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면 지금쯤 지자체마다 빠짐없이 청소년수련관이 있을 것이고, 방과후학교는 일찌감치 학교 밖 기관으로 옮겨져 제대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방과후학교는 학교 안에서 깊숙이 자리매김했다. 

방과후학교를 지자체, 지역사회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지자체가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현실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지자체와 지역 기관은 수요도 적고,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학교와 협력도 잘 되지 않는다.


방과후학교는 학교에 있어야 한다


학교에 교과수업 외에는 다른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은 1980년대 정도까지로 기억한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이 생겨났다. 

급식, 도서관, 상담 등도 생겼고, 자치활동, 동아리, 계기수업, 현장학습, 체험학습 등도 있고, 교사들도 교과를 넘어서는 인성교육, 민주시민교육,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등도 하고, 수요자 중심의 맞춤교육, 진로탐색, 코칭수업 등도 한다. 

이런 것들을 두고 ‘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학교의 할 일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교육청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마을교육공동체나 혁신교육지구에 대해 “왜 교육예산을 교육이 아닌 일에 낭비하느냐”라는 비판을 누군가 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바 없다. 

오로지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에 대해서만 핏대를 세우며 교육도 뭣도 아니라고 한다.

대체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에만 무슨 미운털이라도 박혔단 말인가. 남다른 점이 있다면 운영에 있어 교사들의 업무가 많다는 것인데, 그러면 결국 귀찮고 힘들어서 그런 것인가. 

일이 많으면 일을 줄일 방안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요구할 일이지, 교육의 본질까지 들먹이며 함께 일하는 다른 동료 교육자를 내쫒거나 위태롭게 하자고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학교에서 방과후학교를 없앨 수는 있다. 학교장의 지시와 학운위의 결정으로 ‘내년부터 방과후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면 된다. 법적으로도 문제없다. 그런데 진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진짜로 이런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것이다. 

강사들은 날벼락을 맞을 것이고,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할 것이고, 학생들도 혼란스러울 것이고, 교육청과 교육부에 엄청난 민원이 빗발칠 것이고, 언론에서도 화제가 될 것이다. 

한국교총 관계자들은 21일 오전 세종 교육부 청사를 찾아 '돌봄방과후학교 책임 전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 중단 촉구 한국교총 항의서'를 교육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항의서를 전달하는 (왼쪽)김갑철 한국교총 부회장과 전달 받는 오석환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사진=교총)
한국교총 관계자들은 21일 오전 세종 교육부 청사를 찾아 '돌봄방과후학교 책임 전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 중단 촉구 한국교총 항의서'를 교육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항의서를 전달하는 (왼쪽)김갑철 한국교총 부회장과 전달 받는 오석환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사진=교총)

학부모들이 많은 학운위에서 이런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도 없다. 법적 근거도 없는데 지금까지 학교에서 계속 운영해왔고 함부로 없애지도 못하는 것은 이렇게 모두의 요구와 필요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관이 맡든 방과후학교는 학교 안에 있다. 그러면 학교가 책임을 지고 운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늘 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과후학교를 외부기관이 맡아 잘 될 리 없다. 

업체위탁으로 피해를 경험한 많은 강사들이 증명한다. 일부 지역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방과후학교의 경우도 바람직하지 않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강사들의 신분이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자체가 맡으면 장소를 빌려주겠다는 것도 무책임한 주장이다. 지금도 툭하면 휴강하는 일도 잦고,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라고 외부단체 개방도 임의로 모두 취소하는 마당에, 어느 기관이 학교를 믿고 안심하고 공간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또 지금도 학교에 잠시 들렀다 가는 외부인 취급을 받는 강사들인데, 지자체와 계약한 강사라면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되, 절대 먹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믿으란 말인가.

책임져야 할 기관이 책임을 지지 않는 교육이 좋아질 수 없고, 불행한 교육자에게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다. 공교육을 외주화, 용역, 간접고용을 통해 하는 것이 교육이 좋아지는 길이고 교육자의 처우가 좋아지는 길이라고 주장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에서 희생된 노동자 대다수가 일용직 외주 용역 노동자였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중시한 풍토가 불러온 비극이다. 

비용을 줄이고 책임을 미루자고 외주 용역으로 노동자를 쓰는 것이나, 업무 부담을 줄이자고 방과후학교를 외부기관이 맡으라고 하는 주장이나 다를 것이 없다. 방과후학교는 국가, 교육청, 학교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이진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