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칼럼] 학교에서의 '찐' 일제 잔재 청산이란
[권재원 칼럼] 학교에서의 '찐' 일제 잔재 청산이란
  •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서울 마장중 교사
  • 승인 2020.11.14 0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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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대전·세종·충남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선 학교에 남은 일제 식민잔재 상징물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사진=정청래 의원 설명자료 캡처)

[에듀인뉴스] 요 몇 년 사이 일제 잔재 청산이 난무한다. 지명을 바꾸고, 학교 이름을 바꾸고, 교훈을 바꾸고, 각종 용어를 순화해야 한다면서 일본식 용어와 순화된 용어 조견표가 연일 기사로, 공문으로 날아온다. 심지어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본식 용어 및 개선 사항을 제출하라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까지 날아왔다.

촌극이 따로 없다. 굳이 따지면 국회, 의원, 요구, 자료, 용어, 청산, 보고가 다 일본식 용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면 근대 이후 만들어진 우리말 어휘 중에 과연 몇 단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물론 일제 잔재 청산은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청산되어야 할 것이 일제에서 일인가 제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청산해야 하는 것이 일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지구촌 다문화 시대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시대착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청산해야 할 것이 전쟁의 참화와 만행,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권위주의와 군사독재, 북한의 세습독재 등 원천이 된 제국주의, 군국주의라면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교육계에는 아직도 청산되어야 할 일제 잔재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일본보다도 일제 잔재가 더 많이 남아있다. 진짜 청산되어야 할 일제 잔재는 몇몇 단어들이 아니라 규제와 통제로 가득한 교육계의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그릇된 관행들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딱딱한 공문서 "명사형 종결어미 사용한 개조식 문장 어디서 왔을까?"


학교를 포함한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각종 공문서, 기획서, 계획서 등은 읽기도 정확한 내용 파악이 어렵다. 완성된 문장으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신 명사형 종결어미를 사용한 개조식으로 압축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생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서는 아예 모든 내용을 명사형으로 종결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식의 명사형 문장들은 변경의 여지,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권위주의적인 느낌을 주며, 보기에는 깔끔해 보이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명사형 문장이 어디서 왔을까? 일제 강점기다. 카나가 아니라 한자로 문장이 마무리 하는 것을 선호하던 일제 관료들의 취향, 그리고 강한 명령의 의미를 가진 문장에서는 종결 어미를 사용하지 않는 일본어 어법이 그 기원이다.

그야 말로 반드시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다.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 관리자  "표가 많은 이유, 몇 단계 걸쳐 오직 결재만 하는 관리자"


우리나라와 일본의 공문서는 온통 표 투성이다. 각종 서식은 모두 표로 되어 있으며, 각종 계획서나 기획안도 내용을 문장으로 설명하는 대신 표로 정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공문서에 표가 이토록 많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공공기관에서는 국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산 문서편집 프로그램이 오직 표 작성 기능 하나 때문에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은 아예 공문서의 전산화 자체가 늦어져 팩스를 사용하고 있다.

왜 일본식 공문서에는 그토록 표가 많을까? 관리자가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 관행과 연결된다. 일본식 관료제에서는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 중간 관리자들이 단계별로 있다. 계단의 제일 아래에 있는 직원들만이 실무를 담당하며 그 위로는 몇 단계에 걸쳐 오직 결재만 하는 관리자들이다.

이렇게 실무를 담당하지 않는 관리자가 많으니 자연스레 결재 칸이 많아지며, 또 실제 내용 보다는 관리자 보기에 보기좋은 모양의 문서 만드는데 치중하게 된다. 그 결과가 화려하고 복잡한 각종 표와 서식이다.

표로 작성된 문서는 얼른 보기에는 매우 정리가 잘되어 있고 깔끔한 것 같지만 실제로 업무에 적용하려 하면 상당히 복잡할 뿐 아니라 여러가지 오해의 소지도 많이 만든다.

무엇보다 문서 작성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그 표가 엑셀 파일이 아니라 호환성이 없는 한글(HWP)문서에 작성된 경우에는 자료 축적의 의미도 없고, 데이터 베이스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읽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여 업무를 진행하는 것 보다 관리자들에게 그럴듯한 공문서처럼 보이게 하는데 더 치중하는 형식주의야말로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다.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 관리자 "교장도, 교감도 아닌 교무부장이 각종 회의 진행"


우리나라 학교에는 수많은 위원회와 회의가 있다. 어찌나 많은지 문서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교사들의 토의 토론을 거쳐 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사들은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그 위원회나 회의를 개최하는 일, 진행하는 일, 결과를 정리하고 반영하는 일들까지 모두 교사의 업무다.

도대체 이래서 언제 수업을 하고 학생을 지도할까 싶다. 결국 잡무가 되어버린 회의는 실제 의사결정 과정이 아니라 문책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이만큼 노력을 했다”를 증명하기 위한 용도, 혹은 책임을 관리자가 아니라 여러 교사들에게 흩어버리는 용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관리자가 각종 회의나 위원회를 주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문서상에는 교장, 교감이 위원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다. 교장도, 교감도 아닌 교무부장이 각종 회의를 진행한다.

교장, 교감은 회의실에서 의장석에 앉아 있지만 회의를 진행하는 대신 회의가 다 끝난 다음에야 말을 보탠다. 이러다 보니 때로는 한시간 이상 회의해서 결정한 내용을 교장, 교감 한마디로 뒤집어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회의에서 정식으로 발언을 하던가, 아니면 회의를 직접 진행하면서 자기가 설정한 목표로 이끌던가 해야 하는데, 기껏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회의 다 끝난 다음에 엎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가장 고질적인 일제 잔재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는 관료제 위계가 높아질수록 실무에 참여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인 일본 통치자인 쇼군 역시 업무가 이루어지는 과정 외부에 존재하고 실제 업무는 막신들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처리했다.

일본 제국주의,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런 식의 조직 의사결정 방식이 사회 곳곳에 적용되었다. 실무자들이 회의를 하고, 그 회의 결과를 보고하면 관리자는 그저 도장만 찍거나 본인 생각에 따라 뒤집어 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관리자는 마치 천황이 관료제 외부에 존재하듯이 의사결정과정 바깥에서 초월적인 존재로 존재한다.

사실 조직에서 각종 회의나 위원회는 최고 책임자의 판단을 돕고, 조직 구성원들간에 또 구성원들가 책임자 간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최고 책임자는 구성원들에게 어떤 부분에서 판단을 도와야 하는지,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고, 회의가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당연히 최고 책임자가 회의를 직접 진행해야 이런 일이 가능하다.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 조직들은 당연히 그렇게 한다. 우리나라도 기업들은 이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유독 학교에서만 교장, 교감이 회의 바깥에 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실무를 담당 하지도 않고,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회의마저 주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관리자‘이며 ‘기관장’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무슨 일본의 쇼군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 밖에도 학교는 찾아보면 무수히 많은 일제 잔재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것은 일본 문화가 아니다. 일본은 자유세계의 한 축이며, 일본 문화 역시 세계 인류 문화유산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일본 문화에도 당연히 훌륭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으며, 우리가 아무리 무시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세계에서 그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것은 일본 그 자체가 아니라, 일본 문화가 아니라, 일본이 남긴 어두운 시대의 찌꺼기인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유산이다. 아직까지도 그것들이 우리 학교의 제도, 관행 속에 버섯처럼 도사리며 숨을 쉬고 있다. 심지어 일본보다도 더 많이 살아남아있다.

이 기회에 일제잔재 청산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일제잔재 청산은 민족의 순수성을 되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군국주의, 권위주의의 묵은 때를 벗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일제잔재 청산의 반대편에는 민족정기 회복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서 있는 것이다. 일제잔재 청산하고 학교를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만들어보자.  

권재원 서울 마장중 선생님/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사진=지성배 기자)
권재원 서울 마장중 선생님/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사진=지성배 기자)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서울 마장중 교사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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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llc 2020-11-16 11:27:55
부디 하루빨리 일찐이라는 것이 없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