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칼럼] 코로나19로 본 매뉴얼 사회와 민주시민 교육
[권재원 칼럼] 코로나19로 본 매뉴얼 사회와 민주시민 교육
  •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 승인 2020.02.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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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사회 일본이라는 비판은 타당한가
(사진=MBC 캡처)

[에듀인뉴스] 안타깝게 우리나라의 신종 코로나 감염자 수가 중국 다음으로 많아지고, 30여개 나라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바다 위 격리된 대형 크루즈선 ‘프린세스 다이아몬드’ 호를 걱정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재난에 가장 대처 잘 한다고 알려진 재난 강국 일본이 뜻밖에도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일부는 의아해 하고, 일부는 비판하고, 심지어 일부는 ‘거대한 일본산 코로나 배양 시험관’이라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일본보다 우리가 더 훌륭한 대처를 하고 있어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설레발이 되고 말았지만.

이 조롱과 비판 중 일본이 매뉴얼에 집착하는 관료주의 때문에 전례없는 상황을 만나자 서로 책임을 미루다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 있다. 한 편으로는 타당한 비판이다.

실제로 일본은 철저한 매뉴얼의 나라기 때문이다. 일본의 재난 대비 매뉴얼은 상상 이상으로 꼼꼼하다. 예상 가능한 모든 재난 상황에 대해 우스개 소리로 화장실을 어떻게 가느냐 까지 상세한 행동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재난 상황에서 쉽게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 학습한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뉴얼 범위를 벗어나는 역대급 규모의 재난, 혹은 상상도 못한 엉뚱한 돌발 상황에 직면하면, 누구도 책임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일본의 이런 모습은 심지어 스포츠 경기, 특히 축구나 야구 한일전에서도 나타나곤 했다.

작전대로 진행될때는 난공불락처럼 보이다 작전에서 예상하지 않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갑자기 조직력과 사기가 와르르 무너지며 어이없는 역전을 허용하곤 했다.

가령 수많은 가옥이 무너지고 고속도로와 항만이 파괴될 정도로 강력했던 1995년 효고현 남부지진, 공항이 침수되고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강력했던 2018년 태풍 ‘제비’ 등의 대형 재난에서 일본이 보여준 일사불란하고 질서있는 대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빠른 복구는 “과연”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매뉴얼로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도 9.0(효고현 남부지진보다 1400배 이상 강하고, 포항 지진과 비교하면 백만 배)이 넘는 일본 지진 관측사상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과 그에 잇따른 아파트 15층 높이의 만화에도 안나오는 엄청난 쓰나미가 들이닥치자 그만 혼돈 상태에 빠지면서 결국 정권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번 코로나 감염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모든 잠재적 의심환자 수를 넘어서는 3700명의 승객을 태운, 더구나 소속은 영국, 운항사는 미국, 프로그램 운영사는 일본, 승객의 절반은 외국인이라 도무지 소속과 관할을 특정할 수 없는 크루즈 선이 나타나자 업무소관과 대처방안을 못 찾고 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매뉴얼 사회에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그러니 일본이 철저한 매뉴얼 사회라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우리가 매뉴얼 사회가 아니라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예외적인 상황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다. 매뉴얼을 넘어서는 상황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뿐, 실제로는 매뉴얼 대로 수행함으로써 안 그랬으면 큰 재난이 되었을 상황을 큰 피해없이 조용히 넘어간 자잘한 재난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잘못은 “매뉴얼에 대한 과신” 혹은 “매뉴얼에의 집착”이지 결코 “매뉴얼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일본은 매뉴얼 사회라서 이런 예기치 못한 재난에 대처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각자도생에 익숙한 다이나믹 코리아라 현장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잘 대응하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매뉴얼은 결코 갑갑하고 고루한 것이 아니다. 매뉴얼은 관료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매뉴얼은 매우 가까이에 있다. 우리 일상 생활의 대부분이 매뉴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습관과 관행이라고 부르는.

만약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매 순간 순간 마다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고, 결과를 예측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만들어가며 살아가야 한다면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반복되는 상황, 익숙한 상황에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행동을 미리 정해놓는다. 즉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다.

(사진=픽사베이)

이렇게 이미 판단이 다 끝난 것들을 굳이 또 판단하지 않고 미리 정해진 매뉴얼로 만들어 두도록 학생들을 이끄는 것, 이게 바로 교육학에서 말하는 습관화다. 스키너는 강화를 통한 습관화를, 듀이는 반성을 통한 습관화를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우리 삶은 굳이 생각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하는 행동들로 가득하다.

매뉴얼의 헤택은 단지 당황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매뉴얼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에너지를 얻는다. 뻔한 일에 소중한 시간과 지적 에너지를 소모하지않고, 오히려 뻔하지 않은 낯선 상황, 문제 상황을 찾아 이를 해결하는데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결된 낯선 상황, 문제 상황은 기존 매뉴얼에 추가되어, 다음에는 굳이 에너지를 쓰지 않고 손쉽게 대처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뉴얼이 점점 풍성해지며, 이렇게 매뉴얼이 세상의 더 많은 영역을 포괄해가는 과정이 바로 듀이가 그토록 강조했던 ‘경험’이다.

사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사람은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 즉 서로의 매뉴얼을 돌려보면서 집단 공통의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른의 매뉴얼이 더 풍부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어른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아이들 끼리도, 어른들 끼리도 이렇게 매뉴얼을 공유하면서 확장하는 과정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동체가 함께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과정, 이게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매뉴얼을 배우고, 매뉴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혹은 이미 정해진 매뉴얼만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들의 매뉴얼을 참고조차하지 않고 그 특정한 매뉴얼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고루한 답습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기존의 매뉴얼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재료가 된다. 백지 위에 매뉴얼을 쓰는 것 보다는, 기존의 매뉴얼을 공유한 가운데 이것을 첨삭하는 과정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매뉴얼을 그것이 실제 적용되는 경험과 연결지어가며 생생하게 익히고 때로 새로운 것을 추가하고, 때로 낡은 것을 지워나가는 것, 이게 바로 참된 교육이다. 교육은 함께 모여 매뉴얼을 고쳐 쓰고 편집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매뉴얼을 고쳐 쓰려면 무엇보다 먼저 기존 매뉴얼을 숙지해야 한다. 매뉴얼을 숙지한다는 것은 그 문구나 절차를 철저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매뉴얼이 목적으로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매뉴얼이 규정한 각각의 행동 절차(프로토콜)가 목적 달성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그대로 연결된다. 민주주의는 그 나라 국민들이 그 나라의 매뉴얼의 공동 저자, 공동 편집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모두 매뉴얼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반면 매뉴얼 전체에 대한 이해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제한되어 있는 사회, 매뉴얼을 해석하고 고쳐쓰고 편집할 기회가 소수에게만 주어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비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각 구성원들이 매뉴얼 전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매뉴얼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 보다 당장의 프로토콜을 그대로 수행함으로써 문책을 면하는 것이 관심사가 될 뿐이다.

만약 일본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자 했다면 매뉴얼 사회라는 점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해야 한다.

매뉴얼 사회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들이 매뉴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 자기들이 매뉴얼의 주인이며, 공동 편집자라는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 한 마디로 민주주의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

실제로 크루저 선(프린세스 다이아몬드호)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어이없는 실수들은 일본이 매뉴얼 사회라는 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령 승객 전원을 하선 처리하기 전에 증상 검사를 받지 않은 승객이 20명도 넘게 있었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 구멍은 “각 선실을 다니면서 체온 등 건강상태를 측정한다”라는 지침을 “탑승객 전원의 건강상태를 파악하여 환자 발생시에 즉시 대처하라”로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각 선실만” 다니면서 측정했기 때문이다.

일개 담당자는 자신이 매뉴얼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문자에 나온 것 이상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마침 검사 실시 당시 선실 안에 없고 갑판 위에 있던 승객이 검사에서 누락되었다. 그렇다면 검사 하기 전에 승객들을 모두 선실로 들여 보냈어야 하지만, 그건 다른 담당자의 일이며, 검사 담당자의 책임이 아니다.

이게 바로 책임의식 없는 매뉴얼 사회, 민주주의가 결핍된 매뉴얼 사회의 문제점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매뉴얼 사회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야 말로 국왕이나 통치자의 사사로운 권력 행사를  국가 매뉴얼, 즉 헌법으로 제한하는 철저한 매뉴얼 사회다. 다만 국민이 모두 이 매뉴얼의 공동 저자로 참여하고 책임감을 느끼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것은 좋다. 우리가 일본보다 민주주의가 앞서 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게 매뉴얼을 무시하고 각자 나름대로 각자도생, 현장에서 알아서 대처한다는 식의 무질서를 정당화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끈질긴 협력과 합의를 바탕으로 어떤 문제에 부딪칠 때 마다 기존의 매뉴얼을 공유하고, 이를 함께 개정해 나가는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각오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매뉴얼은 그 동안의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누적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그리 많지 않기다. 대부분의 경우 ‘자력갱생’이나 ’창의적 접근’ 보다는 기존 매뉴얼 대로 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다만 모든 구성원이 매뉴얼을 숙지하고, 그 목적을 공유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책임감을 가진 상태라야 빈틈이 생기지 않는다. 그 책임감은 매뉴얼이 자기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 매뉴얼 작성과 개정 과정에 자신이 참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매뉴얼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은 매뉴얼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건 내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야”하고 외면하는 대신 기꺼이 매뉴얼 개정판 제작을 위한 공동저자로 나설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교육이 해야할 일이다.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것, 즉 사회의 매뉴얼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장차 공동 저자로 참여할 지식, 기능, 태도를 길러주는 것. 민주주의는 철저한 매뉴얼 사회이며, 모든 구성원이 매뉴얼을 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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