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동반휴직으로 미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커다란 쉼표 같은 시간이다. 숨 가쁘게 달리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쏟아지듯 부여되는 일들에 묻혀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애 쓰고 있는지도 잊는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떨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고 보면 놓쳤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다른 각도의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시간이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사는 가장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학교로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더 선명하게 보일까? 한국 공교육 현장을 벗어나 타지에 서면,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직접 삶으로 미국 문화를 경험하며 ‘차이’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그 생각을 확장 시키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라스베이거스의 밤과 낮 거리 풍경. 코로나로 인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사진=이다정 교사)

[에듀인뉴스] 몇 주 전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을 때이다. 소도시 포틀랜드와는 다른 화려한 도시.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히 거리를 걷고 싶었으나 거리에 다양한 인종, 다양한 사람들 모습에 시선이 산만하게 흔들렸다.

흑인들이 많았고, 체구도 다르고 스타일도 각양각색인 사람들 속에 있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알았던 세상과는 다른 차원 속에 뚝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소위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는 이리도 혼란스러운데 함께 어울려 살아온 미국인들은 자신과 다른 인종을 바라볼 때 어떠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솔직해지자면, 나는 조금 두렵다. 그 두려움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보던 중 아이의 모습에서 약간의 답을 찾았다.

6살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 교육기관인 프리스쿨(preschool)에 다니고 있다. 2월 경, 영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다니기 시작해서 코로나로 잠시 가지 못하다가 지금은 7개월 째 다니고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혼자 놓인 아이는 처음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왔다.

수다쟁이 녀석의 풀죽은 모습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생존(?)을 위해 들었던 말을 따라하다더니 이제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정도로 말을 한다. 물론 현지 아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친구들과 스스름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  

아이는 곧 잘 자신이 겪은 하루, 그리고 친구들 이야기를 해 준다. 베스트프렌드는 애미와 에이즐리, 같이 장난을 치는 친구는 제이크, 새로 온 친구는 마크. 친구들과 뭘 하며 놀았고, 왜 같이 웃었는지 등 소소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들으며 문득 나와 다르게 친구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는 한 번도 친구의 피부색이나 머리칼 색과 같은 ‘다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친구는 그저 존재하는 친구, 그 자체였다. 친구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어떤 행동이 재미있었고 자신에게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말만 듣고 친구들이 어떤 인종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적은 인원의 학급이지만 인도,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은 다양했는데 말이다.

(사진=이다정 교사)

물론 상급학교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날 것 그대로를 흡수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외적인 다름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경험하고 함께 어울리다보면 두려움은 막연한 인식,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실제가 아닌 막연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현대인의 두려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혐오가 특정 집단에 투사되는 정치적 위기를 호소한다. 자신의 삶을 통제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은 이민자나 소수인종, 여성과 같은 외부 집단을 향하게 하고, 그들을 타자화 시키며, 사람들은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낄 때 통제력을 더 움켜쥐려고 하며 분노와 혐오와 같은 감정으로 전염된다고 말한다. 

(출처=http://www.cglearn.it/)
(출처=http://www.cglearn.it/)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려왔던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다.

최근 대선을 치르며 그 어느 때 보다도 다양성에 대한 수용 문제는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곳에 머물다보니 그동안 타문화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즘은 미국을 하나로 섞여 동질화되는 현상을 뜻하는 ‘멜팅팟’ 보다 섞여서 조화를 이루되 각 재료의 특징은 살아있는 ‘샐러드 볼(salad bowl)’로 더 많이 표현한다. 직접 살아보니 더 적절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모두 섞여 같아졌다기보다 각각의 다른 문화를 유지한 채 섞여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적 특성은 쉽게 동질화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결국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 관심과 선입견 없는 태도가 필요하다.

미국은 건국 이래 그러한 고민을 끊임없이 지속해왔고, 다양성을 수용해 왔기에 타국과는 다른 자원을 가지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흡수된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소통하며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미국을 강하게 만든 주된 자산이다. 그러나 진보적 가치인 ‘다양성’은 필연적으로 기존 기득권층을 지탱하는 힘을 감소시키기에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가치였을 것이다.

이민규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의 숨은 지지자(shy Trump)가 많았다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미국의 가장 큰 힘이다. 다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면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포틀랜드 미술관에서 열렸던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화가 로버트 콜스콧(Robert H. Colescott) 전시. 왼쪽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들라크루아에 대한 경의>로 작품은 원작과는 다르게 인물들이 흑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예술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즐겁고 유쾌한 하나의 방법이다.(사진=이다정 교사)

얼마 전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다시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 같은 행정부'를 만들겠다는 바이든 당선인의 방침아래 여성 및 유색인종 인사를 확정하는 등 다양성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학교로 복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다양성이란 가치 인식이 비교적 적은 한국에서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일상에서 다른 문화를 접촉할 기회가 적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양성을 체험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법을 익히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이다정 교사
이다정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