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

목적 빼고 다 바뀐 학폭법 "미봉책"
범죄는 학교 밖에서, 갈등은 학교 선도위에서..."학폭법은 폐지되어야 할 악법"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

학교폭력 예방도, 대책도 불가능한 학폭법

[에듀인뉴스] 2004년 제정, 2012년 강화된 후 수많은 개정을 거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은 목적을 제외하곤 수정되지 않은 조항이 없을 정도다.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하기는커녕 개인 갈등과 소송, 학교에 대한 불신과 교육자로서의 무력감만 야기한 악법이 되어 버렸다.

올해 30년이 된 (사)참교육학부모회는 1996년부터 학부모상담실을 운영해 왔고 필자는 전 상담실장이었다. 학폭법이 제정된 후에도 학교폭력 상담은 해마다 늘었고, 이는 2018년 8월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자치위원회) 심의 건수와 올해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초등학생의 학교폭력이 늘고 있다는데, 이유가 뭘까?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몇 년 전 상담 사례를 소개한다.

초등학교 1학년 가해학생의 상담 건으로,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아이가 교실에서 편을 나눠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6명을 가해자로 지목해 자치위원회가 열렸다. 가해학생 조치로 아이들이 1호 서면사과를 받았는데 번복할 방법이 없겠냐고 했다. 놀이와 폭력의 구분이 무엇이냐, 조사 과정에서 1학년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얘기할 수 있었겠냐, 1호 서면사과 조치라도 아이들은 졸업할 때까지 6년 동안 ‘학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는 이유였다.

‘학폭’이 유행어처럼 남발되는 이 같은 사례는 초등 저학년에선 비일비재하다.

현행 학폭법과 개정 학폭법이 가진 문제와 한계

지난 8월 2일 학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으로 과연 학폭법이 양산해 온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우리 단체는 여러 채널을 통해 현행 학폭법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첫째, 학교폭력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내외 모든 폭력’은 교사·학부모처럼 학생이 아닌 사람도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가족 휴가를 갔다가 그 지역 아이들과 시비가 붙어도 공동 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둘째, 교사가 교육적 관점에서 재량권을 발휘할 수 없다.

현행법은 사안을 인지하면 반드시 신고해야 하고 미신고 시 직무유기, 화해·조정 시 축소·은폐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셋째, 회복적 관점에서의 ‘교육’이 불가능하다.

학교폭력은 아이들의 발달 특성 상 가·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은데도 발생 초기부터 가·피해자를 구분하여 처벌하는 ‘징벌적 방식’으로 진행된다.

넷째, 가해학생 조치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함으로써 소송이 남발하고 블루오션이 생성됐다.

피해학생 보호 차원에서 재발 방지 장치로 마련한 학생부 기재가, 현장에선 피해학생에 대한 사과 대신 능력 있는 행정사·변호사 찾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지난 달 30일, 국회에서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사진=지성배 기자)
지난 달 30일, 국회에서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 15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사진=지성배 기자)

회복력을 빼앗긴 학교 교육공동체, 학교 밖으로 내몰리는 학생들

그럼 이번 개정안의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학교폭력이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되면서 학교폭력은 더 이상 학교 내 자치 문제가 아닌 학교 밖 행정처리 사안이 될 것이다.

그동안 자치위원회에서는 관련학생(가·피해학생 모두) 개인의 가정 여건이나 특정 성향, 학생들 간의 관계, 담임선생님과 생활지도 선생님의 선도 의지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정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학교가 사법 기관이 아닌 교육 기관인 이상 원래 이 법의 목적에 맞게 학교 교육공동체로서의 관계 회복과 교육적 가치에 중심을 두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서 ‘자치위원회’인 것이다. 그런데 교내 자치를 포기하고 학교 밖에서 심의만 하겠다고 한다.

이번 개정안이 우리가 품어야 할 학생들을 학교 담장 밖에서 법대로 처리하도록 무책임하게 내모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둘째, 학교자체해결제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경미한 사안을 심의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으니 학교폭력 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지만, 한편에선 진단서가 없어도 피해학생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경우 학교자체해결 사안으로 축소할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4가지 기준 외에도 다양한 사안들이 발생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전담기구와 학교장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현행법에 학교장종결이 가능한데도 유명무실한 이유를 분석해 보길 바란다.

학교자체해결제가 관련학생과 학부모, 전담기구가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자칫 행정편의주의로 빠져 결국 새로운 핑퐁게임이 될 것이다.

셋째, 1~3호 조치 사안의 학생부 기재 유예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국 4호 이상의 조치를 경감시키려는 불복절차만 양산될 뿐이다. 학교자체해결제가 인정됨에도 불구하고 교육지원청의 심의위원회에 상정된 학교폭력 건이라면 3호 이하의 조치가 결정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4호 이상의 조치에 불복하는 가해학생 측과, 이와 반대의 경우를 호소하는 피해학생 측의 행정심판이 늘어날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또한 1호~3호의 경미한 조치를 받은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폭력 집행유예자’라는 낙인과 트라우마로 힘겨운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진 않을까. 앞의 상담 사례처럼 결국 ‘학폭’이라는 별명에 ‘유예’라는 별명이 추가되는, 학교폭력 관련 학생은 줄어들지 않고 주홍글씨가 세분화되는 양상이 펼쳐질 것이 우려된다. 학생부 기재를 폐지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선도위원회 조치는 학생부에 기록하지 않는 것처럼.

학생부를 체벌을 대신할 ‘무기’로 삼는 고정관념부터 버리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넷째,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의 침해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학교 현장의 업무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고 환영한 일부 단체들에게 학생과 학부모도 그러할지 생각해 보시길 권한다. 학교 일과중에 불려 가 사안조사서를 작성하고, 평일 방과 후에 자치위원회에 참석했던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멀리 있는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에 출석해야 한다. 익숙했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아닌 낯선 전문가들 앞에서 육하원칙으로 진술해야 한다. 워낙 많은 사안을 처리해야 할 테니 소명할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고등학생도 심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초등학생이 받을 위압감과 두려움을 어떻게 보듬어 주어야 할지 생각만 해도 암담하다.

‘모든 아이가 우리 아이’라면서 ‘네 아이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학교 밖으로 내몰고, 학교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학교 학생이 전학을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해학생 조치에서도 학교에 부담을 줄 교내봉사 등 학교 내 조치는 사라지고 학교 밖 조치만 남게 되지 않을까. 학교에 교육은 없고 구형과 집행, 관리·감독만 존재하게 될까 봐 두렵다.

이 밖에 앞에서 지적한 ‘광범위한 학교폭력 대상’, ‘교사의 교육적 개입 불가’ 등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학폭법 폐지, 초등학교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자

애초에 학교폭력이라는 개념부터 잘못된 것이다. 학교는 교육 기관이므로 ‘폭력’이라는 범죄가 아닌 ‘갈등’이라는 관계적 측면에서 접근해 올바른 사회성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 법엔 관계는 없고 조치만 있다.

형법도 민법도 아닌 어설픈 법으로 더 큰 상처를 받고 학교를 떠나는 피해학생 사례도 늘고 있다. 피해학생을 위한 사후 관리 방안도, 전문 상담기관도, 지원 시스템도 학폭법에선 형식적으로 최소한만 다루고 있다.(피해학생이 안전공제회 보상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자치위원회를 개최해야 하는 부분도 문제가 있다.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

가해학생 선도도, 피해학생 보호도 불가능한 학폭법은 하루 빨리 폐지하고, 학폭 블루오션을 조성하는 학생부 기재도 폐지해야 한다. 범죄는 학교 밖에서 범죄로 다루고, 갈등은 학교 선도위원회에서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당장 폐지가 어렵다면 초등학생부터 시범적으로 적용해 보자. 2019년 상반기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초등 1학년~3학년은 배제되었다. 설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만 10세 미만은 소년법에서도 제외된다. 초등 저학년은 조치가 아닌 교육이 필요한 대상이다. 전체 초등학생을 배제하는 것에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과도기적 대안으로 우선 초등 3학년 이하 학생이라도 학폭법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을 호소한다. 제발, 아이들을 살리고, 학교를 학교답게 살려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