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청문회를 통해 배운 한 가지...문제 근원은 학력주의, 해법은?
[칼럼] 청문회를 통해 배운 한 가지...문제 근원은 학력주의, 해법은?
  • 한치원 기자
  • 승인 2019.09.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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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저자

유일한 해법은 서울대학교 학부 폐지
(사진=kbs 캡처)

[에듀인뉴스] 여름의 끝을 뜨겁게 달군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이 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부와 지위를 세습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장치들로 잘 짜여 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정교한 장치들을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21세기 대한민국 신귀족층과 평민층, 사람과 개돼지, 결국 개인소득 3만불 시대 대한민국의 주인과 객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의 청문회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회에서 스스로 주인인지 객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이다. 세습 장치들의 혜택을 입고 있는 자들(서울대생, 고려대생)이 마치 피해자인양 흥분하고, 실제 피해자들이 이들 가짜 피해자들의 위선에 박수를 보내는 웃픈 모습도 나타났다. 

이 사회의 객이면서도 자신을 객의 위치에 묶어두려는 주인들에게 환호하고 있는 무지한 집단의 존재는 설명이 참 어렵다. 이들이야 말로 정의로운 방향으로의 사회변화를 가로막는 특권 장치들을 인지 못하는 비난하기 어려운 피해자 집단이라는 것이 마음 아프다.

이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세습사회로의 이행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 청문회 이후 안타깝게도 그런 진행은 더욱 가속화될 조짐이 보인다.

지난 한 세기를 거치며 만들어진 세습 장치 중에서 역시 으뜸은 교육제도다. 서울대학교 법대 인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장학금, 의학전문학술지, 총장상, 의학전문대학원, 그리고 외국어고등학교 등 청문회 관련 수십만 건의 언론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교육관련 단어들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설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이제 아주 명료하게 특권 계급의 사람들에게 부와 지위를 세습시켜주는 복잡하고 정교한 제도로 정착하였다. 교육학 교수로 30년을 살아온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 고액 입시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한 제도가 되었다. 제도가 아니라 괴물이다.

학벌주의는 세습사회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심리적 기반이다. 취업도, 결혼도, 육아도 학벌주의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것을 눈치 챈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한다. 슬기로운 판단이다. 

오늘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학벌 기반 세습사회 건설의 제도적 기반으로 작용해 온 국립서울대학교 문제이다. 청문회에서도 위원장이 은근히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국립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강력한 무기였다. 

청문회의 주인공이었던 후보자도 진행을 했던 위원장도, 후보자를 지키려는 민주당의 대표도 무너뜨리려는 자유한국당의 대표도 모두 국립서울대학교 출신들이다.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해방 후 최초의 졸업식에서 미국인 총장(안스테드)가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였고, 곧이어 서울과 그 주변의 10개 국공립 대학과 1개 사립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출범한 것이 국립서울대학교이다. 

국립서울대학교를 출범시키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은 “대한민국에도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대학” “국가에 봉사하는 대학”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신생 국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는 모두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명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여론은 매우 강했다. 공권력은 이를 물리적 힘과 반공의 논리로 억압하였다.

출범 시 내걸었던 이런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70년간 서울대학교에 대한 파격적 지원을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립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는 1명당 년 3000여만원을 지원하는 반면 나머지 국공립대학 학생들에게는 연간 800여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사립대학을 포함하면 대학생 1명 당 정부 지원금은 500만원에 불과하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금은 전국 대학생 평균의 6배 이상이다. 서울대학교에는 매년 세금 430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대신 학생 규모가 비슷한 부산대 등 다른 지방 국립대학들에는 고작 1200억원 내외를 지원해 왔다. 

지난 70년 동안 그렇게 편파적, 파격적, 맹목적 지원을 지속해 왔다. 이런 직접적 정부 지원금 이외에도 국립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산학협력단을 통해 외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구비 규모는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학 교수들이 받는 연구비를 모두 합한 규모에 달한다. 

이 땅에서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학생,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갖는 프레미엄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서울대학교가 가장 잘하는 것은 우수한 학생을 뽑는 일이다.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매년 대입 지원자 중에서 수능성적과 스펙 순위로 전국 1등으로부터 순서대로 3000여명을 뽑는 것이 서울대학교이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모여든다. 입학가능 연령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5% 이내만이 입학이 허용되는 대단한 선발이다. 지구상에 이런 능력을 가진 대학은 서울대학교가, 그런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국립서울대학교는 설립 당시 내세웠던 명분이나 파격적 지원에 합당하게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대학이 되었는지? 지금 서울대학교가 국가에 봉사하는 최고의 대학인지? 묻고 싶다. 나의 답은 ‘아니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대학은 결코 아니다. 세계적인 대학평가 기관들의 평가 결과 중에는 서울대학교를 100위권 이내로, 간혹 30위권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평가에 반영되는 지표 중에는 교수 1인당 학생 수, 장학금 규모, 도서관장서 규모 등과 함께 교수연구업적 등 다양한 정량적 요소들, 그리고 평판도나 명성과 같은 정성적 지표들이 반영된다. 

이들 중 다수의 평가 지표들이 재정 의존적이다. 풍부한 재정의 뒷받침이 없다면 결코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지표들이다. 교수연구업적은 양적 평가만을 내세우는 우리나라 교수업적평가 제도의 맹점이 만든 거품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파격적 재정지원 없이도 그런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내 대학평가 결과는 서울대학교가 세계적 대학일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2018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를 보면 공학계열의 경우 서울대학교는 국내 대학 중 7위였고, 자연계열은 3위였다. 물론 다른 영역에서는 1위였다. 

공학과 자연과학은 대학이 국가에 봉사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들 주요 영역에서 국내 7위, 3위인 대학이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대학일 수는 없다.

간단한 질문이 있다. 세계적인 대학 운운하기 이전에 서울대학교의 존재나 그 명칭조차를 아는 외국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서울대학교는 과연 국가를 위해 어떤 봉사를 하고 있는가? 서울대학교에 입학을 할 수 없는 95%국민들을 포함한 전 국민이 서울대학교를 위해 매년 4300억원을, 지난 70년 동안 그렇게 맹목적으로 지원해 온 것만큼 국가를 위해 봉사를 했다는 증거가 있는지? ​

과연 그 추상적 질문에 대한 추상적 대답이 온 국민이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하는 일류대학교 입학을 위해 받아야 했던 고통의 크기보다 크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대다수 청소년들의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기보다는 획일적 입시에 매달리게 한 것이 과연 국가를 위한 봉사였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교수 구성을 보면 서울대학교가 스스로 세계적인 대학교라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나의 전공인 교육학과의 경우 19명의 교수 중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는 1명뿐이다. 19명 중 17명이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1명이 국내 타 대학 박사). 

국내 타 대학 출신을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기대학 출신을 교수로 채용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대학에 교수 충원을 의지하는 대학교가 세계적인 대학일류일 수는 없다. 19명의 교수 중 16명이 서울대학교 학부 졸업생이라는 것도 학문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임은 지적할 필요도 없다. 

컴퓨터공학부 교수 33명 중에서 서울대학교 박사는 5명뿐이다. 26명이 외국 박사이고 그 중 23명이 미국 박사다. 스스로 양성한 학자에 대한 신뢰 수준이 미국의 중상위권 주립대학 출신 학자에 대한 신뢰 수준에 못 미치는 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일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대학, 국가에 봉사하는 최고의 대학 하나라도 키우겠다는 지난 70년 동안의 실험은 분명히 실패다. 실패일 뿐 아니라 서울대학교는 우리나라 사회 병리현상의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학력주의의 온상이 되어 있다. 그 졸업생 중에 많은 사람들이 청문회 등에서 국가의 품위 손상에 앞장서고, 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과 좌절로 귀결된다.

청문회 정국을 지켜본 대통령이 던진 단 한마디가 '대학입시 전반에 대한 재검토'이다.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이 내세운 이유이다. 이로 인해 교육부가 분주하다.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수술이 시작될 조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입제도 개편으로 학력주의 폐해를 줄이고, 국민들의 교육고통을 해소하겠다는 것은 한심한 발상이다. 

지난 70년간 우리가 시도해 본 대입제도는 인간이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었고, 그 결과는 늘 실패를 넘어 불안감과 고통의 증폭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일류대학, 특히 서울대학교 입학이기 때문이다. 

400여개 대학이 1위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져 있고, 어떤 순위의 대학을 졸업했느냐가 생애 전 과정을 지배하는 현실을 타파하지 않은 상태로 오직 뽑는 방식의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공정을 빙자한 사기극’이다. 

사기극의 정점에 서울대학교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S가 주인공이고 K나 Y는 들러리일 뿐이다. 그것도 국립대학교가 학생 뽑기 경쟁을 주도하고, 학력주의의 정점에 있다는 것은 비상식이다.

이상적으로는 서울대학교 폐지, 현실적으로는 서울대학교 학부폐지나 국립대학교 통합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이다. 훌륭한 교육제도와 이상적인 복지국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의 많은 국가들 어디에도 그 나라를 상징하는 하나의 초일류 국립대학교를 가진 경우는 없다.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 사회적 가치를 독점하는 출발점이 되고 마는 어리석은 제도를 지닌 채 복지국가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울대학교(학부)가 없어지면 교육열이 식을 것이라거나, 연고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없다.

서울대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금으로 지방 국립대학에 대한 지원을 파격적으로 늘리고, 지방국립대 등록금을 (특히 해당 지방 출신자들에게) 파격적으로 낮추거나 폐지하고, 지방 국립대학교 졸업생들을 해당 지역의 공공기관 취업에서 우대한다면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구지 수도권 소재 일부 사립 대학교에 진학하려는 경향은 점차 정리될 것이다.

다양성, 창의성, 융합능력 등 미래 교육을 지배하리라고 예상하는 가치들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획일주의와 표준 등 20세기 의식과 시스템의 강요이다. 우리 교육이 지금까지 경험해 왔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다.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한 일류대학교 입학이 유일한 교육의 목적인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는 없다. 안타깝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저자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저자

한치원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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