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과 무관한 코딩교육과 과학상자의 공통점

과학상자를 활용하면 레이싱카, 경비행기, 풍차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사진=https://blog.naver.com/ciqueen)
과학상자를 활용하면 레이싱카, 경비행기, 풍차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사진=https://blog.naver.com/ciqueen)

[에듀인뉴스=지성배 기자] 초등학교 때 일이다. 당시 강원도 산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에서 ‘과학상자 대회’에 나갈 아이들을 추린 명단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 단위 행정구역인 ‘리’에 살았던 나는 ‘읍내’에 갈 수 있다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설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보는 과학 선생님이 학교로 와 우리를 지도했다. 처음 본 과학 선생님(아마도 대회 준비를 위해 방과후 지도로 오셨던 것 같다)은 신기한 공구들이 담긴 박스와 함께 완성된 3개의 시안을 보여주며 “대회 수상 조건은 하나의 동력(모터)을 활용해 몇 개를 움직일 수 있게 하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모터 하나를 돌리면서 체인들을 연결해 바퀴도 굴리고, 물레방아도 돌리고, 날개도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시안을 하나씩 골랐다. 4개를 돌리면 최우수상, 3개면 우수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욕심이 생긴 나는 과감히 4개짜리 시안을 선택했다.

교육은 선생님이 정해준 '순서'를 익히고 또 익히는 무한반복으로 진행됐다. 내가 구상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그저 ‘순서’를 익히고 또 익히며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그렇게 나간 대회. ‘리’에 살던 나는, 내가 새가슴(?)이라는 것은 이때 깨달았다. 두근대는 마음은 곧 머릿속의 지우개가 되는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결국 하나의 순서를 빼먹는 바람에 4개 중 3개만 구동하게 되면서 나는 우수상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코딩 교육이 국내를 휩쓸었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창의력 사고’, 일명 컴퓨팅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코딩 교육이 있다고 한다.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드류 휴스톤 드롭박스 설립자,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 등 이 시대를 이끄는, 온라인 세상의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은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코딩 개념을 배우고 프로그래밍을 직접 했다고 한다.

현장에 들어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교실로 들어 온 코딩교육은 학교 현장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코딩이라는 이름의 수업을 듣고 간단한 프로그래밍까지 해보고 있다. 

그러나 이 수업이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1개월짜리 강사 양성과정으로 자격증이 남발되고 있으며, 이렇게 양성된 강사들은 아주 ‘친절히’ 만드는 ‘순서’가 적힌 교딩수업교구를 활용함으로써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과는 무관한 수업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제작사에서 만든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는 순서에 적힌 내용 외 다른 시도를 금지하니, 어찌 창의력이 길러질 수 있을까. 

기자가 초등학교 시절 대회를 나가기 위해 열었던 과학상자의 교육 방식이 25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인공지능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한국인공지능교육학회가 지난 6일 출범했다. 학회 관계자는, 특히 초대 학회장 역시 현재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코딩 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학회장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공지능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교육에 대한 프레임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육을 왜 하는지,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먼저 잡아야 실제 교육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인공지능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단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 관심사다. 이 분야 인재 양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있지 않나. 부디 ‘순서’에 얽매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길 바란다. 시간이 좀 걸리면, 속도가 좀 늦어지면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순서가 아닌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아이의 생각이다.

지성배 기자

지성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