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에 대하여

Q. 또 다시 사교육을 부추기지 않을까
Q. IB의 장점만 일부 도입하면 안 되나

[에듀인뉴스] 지난 4월 IBO((International Baccalareaute Organization)와 대구교육청, 제주교육청은 서울에서 국제바칼로레아(IB) 한국어화 추진 확정 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도입을 확정했다. 생각을 꺼내는 수업과 평가의 신뢰도 확보라는 도입 명분과 기존에 혁신을 추구해 온 교수 방법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IB는 뜨거운 감자였다. <에듀인뉴스>에서는 IB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그간 쌓인 질문을 중심으로 한 Q&A 기획을 1부 평가시스템, 신뢰할만한가 2부 우리 교육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3부 국내 도입 시 우려와 혼란 등에 대하여 준비했다.

IB의 국내 도입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 포털에는 IB 사교육 광고가 올라왔다. 그러나 IB 전문가들은 사교육 시장은 고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네이버 캡처)
IB의 국내 도입이 알려진 이후 인터넷 포털에는 IB 사교육 광고가 올라왔다. 그러나 IB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사교육 시장은 고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네이버 캡처)

▲또다시 사교육을 부추기지 않을까

IB는 사교육 근절책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IB 유형의 교육이 국가적으로 보편화하면, 사교육의 지형 변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IB 아래에서도 사교육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 과정에서 사교육의 문제점은 최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사교육을 더 하고, 그것이 실제로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교육비를 많이 쓸수록 성적이 높다는 통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잘하는데도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무한 소모적인 경쟁을 한다는 뜻이다.

IB는 그런 노력이 성적에 직결되지 않는 평가 구조를 갖고 있다. 성적이 낮은 과목을 보완하는 경우는 있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과목을 더 잘하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평가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소한 지금과 같은 사교육 시장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IB를 도입하게 되면 학교마다 교육 과정, 진도, 시험 방식이 획일화되지 않고 달라지게 된다. 가령 임진왜란을 가르친다면 1, 2, 3반 교사는 ‘난중일기’로 4, 5, 6반 교사는 ‘징비록’으로, 7, 8, 9반 교사는 ‘조선왕조실록’으로 가르칠 수 있다.

교재가 다르니 시험 문제도 교사마다 달라진다. 그러면 사교육계에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A 중학교 내신반’, ‘B 고등학교 내신반’ 같은 사교육이 활성화하기 어렵다.

또한 한 문제를 가지고 몇 주씩 심층 사고와 퇴고를 거듭하는 사고력 훈련을 하게 되면 문제집을 수십 권씩 풀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유형의 교육이 보편화한다면 학습지 시장부터 고사할 것이다.

문제 풀이에 집중하던 학원도 설 곳을 잃게 된다. 학생의 개별 과제를 학원에서 도와주기도 쉽지 않다. IB는 내신 평가 항목에 ‘자신이 직접 한 정도’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평가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 과제를 외부에서 해 온 흔적이 확인되면 즉시 그 분야에서 최하 점수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이미 IB 학원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IB가 공교육에 도입되면 사교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존의 사교육은 모두 영어로 하는 수업과 시험에 대비하여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유학생들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 교육청들에서 추진하고 있는 IB는 한국어화를 전제로 한다. IB 본부에서 운영하는 체계적인 정식 교원 연수도 현직 교원들에게만 제공될 것이다.

앞으로 책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하는 학원들이 모두 ‘IB 대비반’이라고 광고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는데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 장기적으로 IB 유형의 수업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단기 집중 족집게 코스 같은 역할은 할 수 없다.

IB 환경에서도 한국의 사교육은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평가 기준이라면 학원에서도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지 않겠는가.

어떠한 교육 제도이든 사회 경제적 지위(SES, Socio Economic Status)가 높을수록 유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수한 교육을 공교육에 넣어야 한다.

양극화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제도적으로 무언가를 자꾸만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중상위권은 못 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최상위권은 오히려 더 따로 하게 만들어서 양극화를 극대화한다.

학교에서 방과 후 영어 수업을 없애자 서민들은 학원으로 몰렸지만, 부자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자본 사회에서 가정 경제의 차이를 줄이기 어렵다면, ‘공교육’에 최상의 프로그램을 넣어서 공교육에서 할 일을 공교육에서 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양극화를 진정 줄이는 방법이다.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IB의 장점만 일부 도입하면 안 되나

IB 도입 전략은 지역 교육청이나 국가 전체로 봐서는 ‘점진적’일 수 있지만 한 학생이 경험하는 한 학교 체제 안에서는 반드시 ‘한꺼번에’ 이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집어넣는 패러다임에서 꺼내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교육 혁명은 긴 호흡으로 장기 계획을 설정해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즉 몇몇 학교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초·중학교에서는 인증을 신청하고 완료하는 2년 동안 일부 저학년에 먼저 적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IB반과 기존의 수능반(국내 교육 과정반)을 나누어서 두 학제를 한 학교에서 점진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범 학교로 지정된 개별 학교 내에서 한 학생에게 적용되는 교육은 한꺼번에 바뀌어야 한다.

즉 한 학생에게 같은 과목에 대해 IB 교육을 일부 하면서 기존 공교육도 일부 하는 방식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IB 인증을 받은 학교들에는 기존 커리큘럼의 절반 정도만 바꾸는 방식 등이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IB 학교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학생에게 적용되는 학교 교육 과정이 한꺼번에 다 바뀌어야 한다. IB 본부에서는 IB 교육 과정의 일부 특징만 반영해서 운영한다거나 꺼내는 교육을 막는 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다거나 할 경우 IB 학교로 인증해 주지 않는다.

꼭 IB 본부의 규정 때문이 아니라도, 한 교육 과정 내에서 혹은 한 수업 내에서 일부분만 바뀌면 학생들이 무척 혼란스러워진다. IB 교육 과정만 도입하고 대학 입시가 안 바뀌거나, IB 논·서술형 평가 제도만 도입하고 교육 과정을 기존 주입식으로 하는 등 일부만 도입하면, 마치 바퀴 하나가 없거나 엔진이 빠진 오토바이처럼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또 IB를 기존 공교육에 50%만 도입한다거나, 수능에 30%만 출제한다거나, 주 1, 2회씩 수업하는 영재 프로그램에 도입한다거나 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 학생들에게 혼란과 이중고를 안기는 셈일 뿐만 아니라 IB를 통해 기대하는 교육 효과도 얻지 못한다.

IB는 한 학생에게 도입할 때 평가의 일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한꺼번에 도입해야 성공한다.

우리 공교육 현실의 문제점들은 IB가 가진 일부 특징만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이 IB를 실제 경험해 본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IB는 단순히 시험 문제나 교수법이 아니다.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을 궁극적으로 실현하는 패러다임이다.

그래서 기존의 집어넣는 교육 패러다임을 유지한 채 일부 방법론만 들여온다면 결국 수능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교사별 평가가 불가능한 내신의 상대 평가도 마찬가지다.

한편 IB 인증 학교가 공교육에 도입된다는 것은 우리 교육의 발전을 막는 제도 전체를 다시 점검하고 개선하는 계기를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교육을 관리 감독한다는 명분하에 사실상 학교의 ‘교육’ 기능을 방해하고 있는 수많은 ‘행정’ 업무들을 전폭 개혁하고 이를 계기로 교육당국의 관리 감독 활동 구조까지 바꾸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공교육에 IB 인증 학교를 도입한다는 것에는 교육 당국이 일선 학교를 ‘관리 감독하고 통치’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기꺼이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난공불락인 우리 교육 문제를 해결할 관리 감독 행정의 참고 사례로도 IB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한 학생이 경험하게 될 IB 교육은 반드시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도입되어야 한다.

* 출처=IB를 말한다(창비교육) By 이혜정, 이범, 김진우, 박하식, 송재범, 하화주, 홍영일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
국내에 IB를 소개하고, IB 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해 온 교육학자와 교사들이 IB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히 밝힌 책 'IB를 말한다' 표지.(이미지=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