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하나고/문학박사

(사진=kbs 캡처)
(사진=kbs 캡처)

[에듀인뉴스] 잔칫집에 초대받았다. 모든 구성원이 함께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한 참석자가 느닷없이,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께 알려드린다. 오늘 잔치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당사자는 강력한 형사법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 그런 장면을 목격한다면 바로 신고해라. 신고자에겐 최대 5억의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라고 큰 소리로 경고한다면 잔칫집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8세 청소년 선거권 시대가 열리자 학교 현장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일부 여론의 눈치를 보며 내놓은 대책 가운데 일부가 이런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18세 청소년을 주권자로 인정한 법안의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늦었지만 우리 사회도 만 18세 청소년에게 주권을 행사하도록 배려함이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 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서 보아도 합리적인 결정이었기에 매우 늦은 감이 있었으나 국회의 입법 과정을 통해 결정한 우리 사회 공동의 합의 정신이다. 

그런데도 마치 ‘정치’와 ‘선거’가 혐오의 대상이라도 되는 양 요란스럽다. 교실이 정치판이 된다는 식의 거부감과 혐오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는 이리저리 꼬이고 얽힌 걸 바르게 만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정치인 셈이다.

그런데 아직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정치만을 정치라고 알고 있단 말인가. 혹은 아직도 정치는 삶과 유리되어, 저 멀리 존재하는 것으로,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한순간에 바꿔주리라는 환상을 가지도록 유도한단 말인가. 

혹시라도 이런 생각을 지니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위해 자리를 양보할 때가 됐다는 신호임을 자각해야 한다.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인간관계의 미학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부터 몸소 배우고 익혀야만 우리 사회의 정치가 맑아지는 법이다. 그런 교육을 초중고 시절 배우지 못했고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작금의 정치판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기성세대가 열린 마음으로 18세 선거권 인하를 진심으로 기뻐해야 한다. 동등한 주권을 지닌 시민으로 그들을 축하해 주고 함께 기뻐해야 옳다. 그들이야말로 기성세대와 다르다. 지연과 학연 등 구태의연한 선거 관습에서 벗어나 주권자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선거에 임할 수 있다. 

18세, 잔치는 이미 시작됐다. 잔치에 초대받았거나 초대를 받지 못했거나 상관없다. 한 사회의 주권자로서 첫 선거에 나서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게 기성세대의 도리이다. 그들의 10년 후, 20년 후를 꿈꿔본다. 30대에 총리가 되고, 40대에 대통령이 될 그들의 세상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어찌 보면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듯하다. 정작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아직도 그들을 통제와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꼰대 정신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꼰대인가, 아닌가. 

한 가지 더. 우리 사회가 18세 선거권 시대가 갖는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선관위도 입법 취지에 맞게 18세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잔칫상을 마련해 주어야 할지 더욱 고민해야 한다.

18세 선거라는 축제의 장에서 더 많은 청소년이 자신에게 부여된 참정권을 당당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에서 지지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정치’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선거’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실제 ‘삶’의 이정표와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가 살아난다.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 하나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