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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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인뉴스] 지난 정권까지만 해도 교육에 대한 담론은 주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는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혁신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진보 정권이 수립되자 오히려 교육 담론 수준이 떨어졌다. 갑자기 입시 공정성이 논란의 중심이 되더니 수능 정시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불똥이 입시와 무관한 초등학교까지 튀었다. 이른바 기초학력 부진이라는 쟁점이 그것이다. 무엇이 화두이고 쟁점인지를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교육 당국 수준은 지금 틀림없이 퇴행 중이다.  

그런데 2017년부터 1년 이상을 허송세월하게 만든 학종 불공정 논란과 2019년 봄을 달구고 있는 이른바 기초학력 논란은 같은 현상의 다른 얼굴들이다. 그건 바로 ‘시험’이라고 하는 오래된 평가방법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다. 학종에 대한 공격이 수능 정시 확대로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학력 저하 논란은 바로 일제고사 방식의 학업성취도 전수검사 입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시험 확대’를 강령으로 내건 세력이 미리 짜놓은 로드맵이라도 있는 것 같다.

3R, 성취수준?..."기초학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누구도 기초학력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 관료뿐 아니다. 교육자, 교육학자들마저 마찬가지다. 논문들을 검색해도 우리 말로는 기초학력이라고 써 놓고, 영어로는 Basic Scholastic Avility, Basic Academic Achievement, Basic Academic Ability 등 제각각의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해당 학년을 이수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학습 능력을 의미하며, 다른 일부는 해당 학년을 이수했다면 달성했으리라 기대되는 학업 성취를 의미한다. 교육학은커녕 우리 말만 정확히 이해해도 학습 능력과 학업 성취가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도대체 기초학력이 무슨 의미일까? 최소한의 3R(읽기, 쓰기, 셈하기)을 말하는 것일까?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그런데 기초학력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기초학력 저하 논란은 무의미해진다.

우리나라는 3R 기초능력 미달 인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낮은 국가다. 또 최근 초등학생의 3R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확인된 바 없다.

그렇다면 학년마다 국가교육과정에서 정해 놓은 성취수준이 기초학력일까? 좀 공신력 있어 보이긴 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취수준을 상세하게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각 학년, 각 교과, 각 단원, 소단원 별로 성취수준을 미주알고주알 정해 두어, 한 학년의 성취수준만 모아도 수백 개가 넘는다. 이 많은 성취수준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기초학력 부진 여부를 판정하면 어떤 학생도 기초학력 부진이란 딱지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한두 개 정도 부진한 건 무시하고 성취수준 중 적어도 2/3이상은 이수하지 못하면 부진하다고 판정한다면, 나머지 1/3(이것만도 100개가 넘을 것이다)은 무슨 근거로 포기하는가의 문제가 생긴다. 국·영·수·사·과 다섯 과목의 성취수준만 따지는데 그럼 음·미·체·실·도는 성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그럼 애초에 교과를 설치해서 수업시간을 할애하는가?

이렇게 문제점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까닭은 애초에 성취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역량중심 교육과정이라고 써 놓고는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학습목표’를 ‘성취수준’으로 둔갑시켜 놓은 조악한 혼종에 불과하다. 이렇게 잘못 설정된 성취수준을 근거로 기초학력을 판정할 수는 없다.

단순한 3R을 넘어 주어진 자료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문해력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주로 대학에서 기초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대학에 들어와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푸념하는 경우다. 미적분도 모르는 학생들이 경제학과에 입학한다는 등의.

그런데 이 수준까지 기초학력을 높여 버리면 학생은 물론 성인의 절반 이상이, 심지어는 그렇게 푸념하는 교수 중에서도 상당수가 기초학력 부진의 낙인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좀 잔인하더라도 냉정히 말하자면 미적분도 못 하는 학생이 문제가 아니라 미적분도 못 하는 학생이라도 받아야 정원을 채우는 그 경제학과의 처지가 문제다.

더욱 황당한 경우는 PISA(국제 학생평가)에서 수학, 과학 순위가 지난회보다 다소 떨어진 것을 기초학력 문제로 둔갑시키는 일부 교육전문가들이다. 이들은 곧 발표될 PISA 2018 결과가 대재앙이 예견된다면서 혁신학교, 혁신교육을 공격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PISA는 기초학력을 측정하는 평가가 아니다. PISA는 기초학습이 아니라 교육을 마친 젊은 청년들이 장차 부딪칠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고 수행할 학습 소양(Literacy)을 평가하는 도구다. 그리고 지금까지 20년간의 PISA 보고서는 우리나라에 대해 일관되게 기초학력 부진이 아니라(이 문제에서는 완벽에 가깝다), 최상위권 학생층의 상대적 부족을 문제 삼아왔다. 그래서 토론,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등 일부 세력이 백안시하는 이른바 혁신교육이 도입된 것이다.

이렇게 저마다 자기들이 중요시하는 관점에 따라 교육의 서로 다른 측면에서 기초학력을 정의하고, 거기에 따라 기초학력이 부진하다고 주장해대니, 기초학력 부진학생의 수는 여러 측면의 최대공약수가 아니라 최소공배수로 산출되어버린다. 중학교 수학만 배워도 알 것이다. 최대공약수 대신 최소공배수를 취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기초와 학력의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따라서 기초학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논란거리로 삼으려면 먼저 ‘기초’와 ‘학력’을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무엇이 학력이며, 그 중 어느 정도 수준이 기초인지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학력은 자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그 시대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합의되어야 한다. 물론 가장 기초적인 수준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요즘 학생들이 논어는커녕 천자문도 모른다면서 기초학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300년 전이라면 이건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이러한 논의가 매우 부족했다. 무엇이 학력이며 어느 정도가 기초수준인지 진지하게 논의하고 합의해 가는 과정도 찾기 어려웠다. ‘국가교육회의’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장기적인 철학과 비전을 세우자고 만들었을 텐데 엉뚱하게 대학입시제도라는 지엽적인 문제로 시간만 허비했다.

기초학력 저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전제하고 있는 기초학력의 개념을 제출하고 이를 공론에 붙이는 대신,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교육방식을, 한 마디로 ‘시험’의 위상이 점점 축소되는 교육을 공격하는 용도로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사교육 학원 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수능 정시 확대를 주장했던 정체불명의 교육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였다.

기초학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합의를 시도한 적도 없는 나라에서 이렇게 저마다의 기준으로 기초학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단적으로 이는 사실상 진영 간의 갈등에 불과하다. 심지어 지난 12년간 PISA나 TIMMS 등 국제 학력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 어떠한 실질적인 증거도 발견된 바 없다.

순위가 떨어졌다?..."석차보다 실력 중요"

만약 순위가 조금 떨어졌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면 그게 학력저하로 보이는 눈부터 교정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진영을 막론하고 교육에는 석차가 아니라 실력이 중요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해 오지 않았던가?

더구나 순위가 조금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것은 2000~2006년까지는 PISA에 참가하지 않았던 싱가포르, 대만 등 동아시아 교육강국들이 2009년부터 참가한 효과일 뿐이다. 이 나라들은 PISA 이전부터 있던 각종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늘 우리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앞섰던 나라들이다. 더구나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우리나라를 1:1로 비교하는 건 의미 없다. 차라리 서울만 따로 떼어서 비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OECD 회원국 사이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위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우리 학생들의 성취도는 여전히 OECD 평균에서 표준편차 범위보다 더 높은 위치를 지키고 있다.

만약 해마다 교육부가 시행한 학업성취도 표집검사 결과를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먼저 눈을 들어 ‘수능’을 볼 일이다. 평가에는 타당도와 신뢰도가 생명이다. 타당도는 평가할 것을 평가했느냐 하는 것이며, 신뢰도는 반복해서 평가할 때 들쭉날쭉하지 않고 같은 결과가 나오느냐는 것이다.

일단 기초학력에 대한 합의를 시도한 적도 없는 나라에서 평가의 타당도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21세기에 거론되는 학력은 갈수록 표준화된 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능력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즉 시험은 학력 중 극히 일부분만을 측정할 수 있는 제한된 도구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시험은 신뢰도가 떨어진다. 난이도를 평탄화한 문제은행이 없고, 해마다 새로 출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해의 70점과 올해의 70점이 같은 학업 능력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중요하다는 대입 수능조차 신뢰도가 안정되지 않아 해마다 물과 불을 오가지 않는가? 그러니 해마다 치른 표집 검사의 점수를 가지고 기초학력 저하를 운운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당연히 그 대책으로 전국단위 일제식 시험을 치자는 주장은 옳고 그름을 넘어 무식한 발상이다.

이 제한된 지면에서 기초학력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긴 어렵다. 다만 다음 몇 가지만 분명히 하고, 이를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둘 것을 제안한다.

첫째,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기초학력 정의를 내리기 위한 전국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새로운 기초학력에 맞는 교육 및 평가방법에 대한 교육자들의 논의, 연구,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성급하게 저마다의 기준으로 기초학력 저하라는 진단을 내리고 그 대책으로 시험의 확대를 대대적으로 요구하는 퇴행적 주장을 접고, 좀 더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