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인뉴스] 중국, 가까운 듯하면서 이질감이 드는 곳이다. G2로 미국과 견주고 있는 중국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중국을 비웃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은 없을까. 지리상으로 가까워 문화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중국. <에듀인뉴스>는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를 통해 중국의 도시에 살아가면서 느낀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중국을 접하고 알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인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예측해보는 작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알다가도 모를 중국!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김현진 중국 대련한국국제학교 교사

[에듀인뉴스] 산하이관에 올 때 천하제일관과 노룡두 딱 두 곳만 가볼 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주나 전주 같은 느낌이다.

숙소 앞에 바로 택시가 있길래 노룡두에 가자고 탔는데 기사님은 인근의 노룡두는 가깝고 볼 게 없다며 자꾸 다른 곳을 데려가려고 한다. 아마 손님도 없는데 인근 노룡두만 가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나 보다. 어설픈 중국어와 몸짓으로 우린 무조건 노룡두로 간다고 하니 노룡두 인근에서 잠깐 차를 세워줄테니 사진 한번 찍고서 다른 곳에 가자고 한다.

택시비를 계산하고서 우리는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더니 우릴 끝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나마 아침에 이런 경우를 당해서 별 느낌이 없지만 밤늦게 이런 경우를 당한다면 조금은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이라서 이런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관광지에도 외국인들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치들을 생각하니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옆 장성을 향해 걸었다. 톈진의 일부 빼고는 노동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별로 많지가 않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길 옆을 걸어가며 인근에 농사를 지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노룡두 입구를 물었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신다. 노룡두 입구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서 입장을 하였다. 여러 가지 옵션의 표가 있는듯하다.

만리장성 동쪽 끝 노룡두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만리장성 동쪽 끝 노룡두의 모습.(사진=김현진 교사)

1381년(홍무 14)에 장군 서달이 산해위(山海衛)를 세우고 관을 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에 산하이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579년에 척계광 장군이 관을 보수하면서 바다로 7장(丈)의 석성(石城)을 증축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노룡두(老龍頭)이다.

산하이관 장성과는 약 6km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 바다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와 같다 하여 노룡두라 부른다.

입구를 지나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건축물들이 있다. 이곳에 주둔했던 군영을 모방 복원한 곳이다. 톈진에 비해서는 북쪽이라 그런지 날씨가 조금은 춥다. 쌀쌀한 날씨 위에 핀 꽃들의 색깔이 다채롭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제주도 김녕 미로공원의 미로와 비슷한 팔괘진이 있다. 이 팔괘진은 병사들의 놀이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들과 잠깐 놀이를 하는데 어딜 가나 막혀 있어 출구를 찾기가 힘들다.

노룡두의 핵심은 역시 바닷가에 새워진 등해루와 바다로 들어간 정로대, 입해석성이다.

등해루는 청나라 시절 많은 문인이 노래하는 글을 남겼으며 여러 황제가 이곳에 올라 경치를 감상했다고 한다. 군사상으로도 중요하지만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고 나서는 수려한 경치로도 유명하다.

등해루에서 정로대를 가는 길목에는 과거 포대의 유물이 남아 있다. 포대 위에서 바라보는 정로대와 입해석성은 노룡두를 대표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입해석성에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다로 들어간 부분의 기초부 이야기로, 이 돌 성벽은 커다란 솥단지 수만 개로 기초를 다졌다는 이야기다. 쇳물을 주입하기 위해 만든 돌덩어리 유물들이 남아 있다.

입해석성과 해신묘 사이에는 모래사장이 있다. 모래사장 옆을 조금 걷다 보면 멀리 해신묘가 있다. 해신묘 옆에서 먹거리를 팔아 회오리 감자를 하나 사서 먹었다.

노룡두에서 바라본 해신묘.(사진=김현진 교사)
노룡두에서 바라본 해신묘.(사진=김현진 교사)

해신묘는 바다신을 모시는 사원이다. 명나라 시기 노룡두 장성을 건축할 시에, 바다에서 작업이 필요했으며, 이로 인해 작업하는 어민과 장병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지어졌다.

산하이관의 위치는 베이징과 동북, 내몽골을 연결하는 길목이다. 지금도 베이징에서 동북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철도가 산하이관을 거쳐 간다.

청나라 황제들이 선양과 조상묘를 찾으러 갈 때도 이곳을 거쳐 갔기에, 당연히 황제 일행이 머물던 행궁이 필요했다.

해신묘를 돌아 나오는데 모래사장 위에서 노인들이 커다란 연을 날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통 놀이로 연을 날리곤 하는데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을 날린다. 그런데 연의 크기가 매우 크다.

노룡두의 표지석.(사진=김현진 교사)
노룡두의 표지석.(사진=김현진 교사)

만리장성의 시작점 노룡두 비석 앞에 줄 서서 찍은 인증샷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주차장 인근에 다달아 택시를 타고 천하제일관으로 돌아왔다. 어제 우리가 저녁에 둘러보았던 그 성안의 마을에는 봄바람과 함께 꽃가루 범벅들이 날아다닌다.

안경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큰 꽃가루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 역시 대륙이다.

천하제일관

숙소 근처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짐을 잠깐 호텔 로비에 맡겨두고 바로 옆에 있는 천하제일관으로 향했다. 중국의 관광지 입장료는 80~100위안을 하는 곳이 많다. 아직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서둘러 천하제일관 입구로 들어갔다.

진황다오에서 꼭 봐야할 명소 중 하나가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 있는 천하제일관이다. 천하제일관 안으로 들어오니 큰 호수가 하나 있다. 밖에서 보이는 만큼 생각보다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조금은 실망이다.

성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고 문으로 나와서 보니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성곽 몇 군데를 갔지만 중국의 성곽들은 높고 폭이 굉장히 넓다. 위에 올라가 본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은 1929년에 제작된 모조품이다.

천하제일관 입구.(사진=김현진 교사)
천하제일관 입구.(사진=김현진 교사)

천하제일관은 화북과 동북을 통하는 군사적 주요 요충지이다. 예전에는 노룡두까지 쭈욱 이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다. 그래도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성곽 위에 올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성곽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복원을 마친 곳도 있고 복원을 하는 곳도 있다.

성곽 위를 걷다 보니 더 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다. 노룡두로부터 이곳 천하제일관까지 그리고 저 산을 넘어 중국 대륙의 서쪽까지 길게 이어졌을 만리장성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다시 한번 만리장성을 보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에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는 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이국적인 도시 톈진에 이어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전통의 도시 산하이관을 방문해보니 중국의 오늘날과 과거를 연이어 본 느낌이 든다.

도시의 편리함이 좋지만 산하이관의 전통적 중국 모습에 맘이 더 간다.

만리장성을 꼭 가보고 싶다고 외치던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어느새 엄마보다 훌쩍 커 만리장성 시작점에 함께 왔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산하이관 안의 예쁜 마을들, 바다 앞으로 장성을 빼 쌓은 노룡두, 몽고족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다시 복원한 만리장성.

이민족을 막기 위해 쌓은 산성의 동쪽 끝 정문으로 이민족이 들어와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을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든다.

중국의 명절 단오절 그리고 종즈

중국에서는 춘절(음력 설), 단오절, 그리고 중추절(추석)을 3대 명절로 지정하여 보낸다. 이 중 단오절은 우리나라에서는 24절기의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명절로 보내지는 않는다.

중국에서는 단오절에 찹쌀을 대나무 잎이나 갈대 잎으로 싸서 찌거나 삶아 먹는데 이것을 종즈라고 한다. 중국은 워낙 땅이 커서 지역마다 종즈의 재료, 만드는 방법, 맛이 다르다. 단오에 종즈를 먹는 것은 고대의 시인 굴원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기원전 3세기 굴원은 초나라가 함락된 데 비분을 금치 못해 5월 5일 강에 투신했다. 그 후 사람들은 이날을 굴원을 기념하는 명절로 정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대나무 통에 찹쌀을 담아 강에 던져 넣는 것으로 제사를 지냈다.

종즈는 명절식품일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서로 기증하는 선물이다.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친척이나 친구 집에 방문할 때 종즈를 가지고 간다.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욕실에 문제가 생겼다. 아랫집으로 물이 새서 수리를 하게 되어 며칠 동안 호텔 신세를 지게 될 판이다. 한국에서도 아니고 이국 땅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와이프의 중국어 학원 선생님께서 우리의 이런 사정을 아시고 위로 차원에서 호텔까지 오셔서 종즈를 주셨다. 실제로 본 종즈는 한국의 뷔페에서 본 찜밥 또는 연잎밥과 비슷한 느낌이다.

주변 사람의 안 좋은 상황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단오절을 기념하기 위해 주고받는 종즈, 오랫동안 기억될 일이다.

단오절을 맞이하여 우리 가족은 난징(南京) 여행 계획을 세웠다. 명나라의 초기 수도였던 곳, 중국 국민당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난징조약, 난징대학살이 있었던 곳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일단 비행기표, 숙소 등을 예약했다.

중국에서 여행을 몇 번 하다 보니 중국 고속열차에 대한 여러 장점 등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난징 여행에도 고속열차를 고려해 보긴 했지만 중국이 워낙 크다 보니 카오티에(시속 300km의 속도로 가는 고속열차)로는 9시간이 걸리고 일반 열차로는 21시간이 걸리기에 짧은 연휴를 활용해서는 비행기가 제격이다 싶어서 비행기 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