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가르치는 '책임'과 '자유'

교실이 무너지고 교권이 흔들린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 현장에 사과나무를 심는 교사들의 이야기. ‘조윤희쌤의 교실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본다.

[에듀인뉴스] 새 학기. 설렘 반, 부담 반의 시작이다. 교과 수업만 하다가 신학기에는 담임을 맡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지만 고민 끝에 결론은 항상 ‘기본부터 가르치자’로 귀결된다. 고2 담임이 되었고, 아이들은 신입생 태를 벗었으니 나름의 요령을 터득해 학교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터였다.

어느 학교나 교칙이 있고, 본교에서는 학생들이 등교하면 휴대폰을 제출하도록 정해져 있다. 사실 이 휴대폰은 학교마다 뜨거운 감자다. 걷자니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고, 안 걷자니 아이들을 유혹에 방치(?)하는 셈이 되어 학업에 방해가 된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대부분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느니만큼 중독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에겐 어떻든 휴대폰이 ‘最愛(최애) 아이템’인 셈이다. 게다가 가장 소중한 자신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자신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이 아끼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책임이 반드시 따라야 함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통해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자니 휴대폰만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학교 방침과 교칙이 ‘등교 시 휴대폰 일제수거’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학급경영방침으로써 ‘자유와 자율정신 함양’이란 매우 소중하고도 중요한 목표를 위해 필자는 휴대폰을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본교는 춘계방학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새로운 반에서 자습을 시작하던 첫날. 다른 반은 휴대폰을 걷었지만 우리 반은 걷지 않았다. 아이들은 담임선생이 까먹었나보다면서 ‘쉬쉬’, 기억을 일깨우지 않으려는 듯 입 밖에도 내지 않는 눈치였다.

텅 빈 조윤희 선생님 반의 휴대폰 수거함. 사진=조윤희 교사
텅 빈 조윤희 선생님 반의 휴대폰 수거함. 사진=조윤희 교사

둘째 날, 조례시간에 말문을 열었다.

“휴대폰 안 걷으니 좋은가요?”

“헉! 예! 선생님이 잊어버리신 줄 알았어요.”

“선생님이 잊어버려서 걷지 않은 것이 아니에요. 교내 학칙에는 반드시 걷게 되어 있음을 잘 알 거에요.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강제로 뺏기면서 자율을 배우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뭔가 갑자기 뭔가 툭! 끊어지는 듯한 해방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선뜻 좋아하지도 못한 채 그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들에게 휴대폰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요. 하지만 왜 학교에선 강제로 거둬갈까요?”

“우리들이 절제하지 못해서요. 수업시간이나 공부해야할 자습시간에도 몰래 가지고 놀아서요.”

소견이 멀쩡한 녀석들이었다. 가지고 놀고 싶은 강렬한 욕망만큼이나 체념의 이유도 분명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재만 없다면 휴대폰은 당연히 편리하다. 쉬는 시간에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스케줄 확인도 할 수 있고 셀카도 찍을 수 있고, 일일이 기록할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적을 필요 없이 캡처해도 되고, 동영상도 볼 수, 검색도 할 수 있고, 간혹 게임도 할 수 있으니까. 사실 아이들에게 휴대폰은 항상 다른 세계로 열린 출구 같은 것이고, 멀쩡한 친구 같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테다. 그런 편리한 친구를 늘 학교에 오면 빼앗기(?)는 것이다.

그 편리함을 유지해주겠다는 선언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호의에 멍한 표정이면서도 진짜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표정이 스쳐 갔다.

“여러분들이 대신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학교에서 왜 휴대폰을 일제히 수거했는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반은 여러분들의 휴대폰을 여러분들의 손에 쥐고 학교 대신 스스로 통제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얻을 때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겁니다.

 

선생님도 어려운 시험을 함께 치르는 거지요. 왜 잘난 척하고 학생들을 유혹에 내몰았느냐는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우리 반의 여러분을 믿고 싶은 거고요. 강제로 빼앗기면서 ‘자유와 자율’을 배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다음과 같이 지켜주세요. 자신 없으면 미리 말하고.”

▲수업시간과 자습시간엔 반드시 전원을 끄고 가방 속이나 사물함에 넣어둔다.

▲수업시간에 몰래 사용하다가 걸리면 그날부로 우리 학급 전체의 자유는 끝이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으며,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는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운 좋게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지 다른 친구 중 누군가는 볼 수 있고 누구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당당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자율에 위배된다.

▲만일 거기서 눈속임이 있거나 거짓이 끼어들면 그땐 다른 반과 마찬가지로 압수이고 벌칙이 따른다.

▲수업시간, 자율학습시간에만 스스로 잘 통제하면 점심, 석식 시간에 사용할 수 있다. 음악도 듣고 영상도 보고 게임도 가능하다.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힘주어 이야기했다. 엄격한 목소리와 표정이었고 진지했다. 아이들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뭔가 중요한 일의 참여자가 되는 듯한 결연함도 느껴졌다. 담임의 학급 경영 방침이 ‘자유와 책임’이므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호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학교 안에서 누구도 누리기 힘든 자유를 우리 반만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특혜, 그러나 그것이 우리 모두의 선택과 책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채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다짐을 받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자율과 자유는 자기 선택이며, 소중하면 소중한 만큼 책임지고 지켜내야 해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들은 답했다. 자신들이 해보겠다고. 먼저 기회를 주시면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특히 ‘단 한 번의 실수도, 단 한 명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서 연대감과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1년 동안 여러분 모두가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킨다면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당당함과 뿌듯한 만족감을 상으로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요즘 종례시간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의 휴대폰은 안녕하신가’ 하고 묻는 것이 중요한 인사가 되었지만 힘차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아이들은 오늘도 ‘자유를 공부’ 중이다.

자신의 자유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노력으로 지켜지는 것이며, 누군가의 강압에 대해 저항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원칙 앞에 성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힘으로 지켜가는 것임을.

막강한 힘에 의해 소극적으로 지켜지는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지키는 적극적인 자유가 중요함을. 

‘자유 연습’을 시작한 지 10일이 지났다. 부산 시골 마을 작은 학교의 교실에선 뽀얀 먼지를 헤치고 투명한 긍지와 작은 자유들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먼 훗날 이렇게 배워 몸으로 익힌 자유가 이 땅을 뒤덮을 날을 기대해본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조윤희 교사는 현재 부산 금성고에서 사회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전국 학력평가 출제위원을 지냈으며 교과서 검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교육부 주관, 제작하는 심화선택교과서 ‘비교문화’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으며 부산시교원연수원, 경남교육청 1정 자격 연수 및 직무연수 강사, KDI 주관 전국 사회과 교사 연수 강사, 언론재단 주관 NIE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