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의 배움혁명] '교육 혁명'을 '배움 혁명'으로 바꾸자
[김두루한의 배움혁명] '교육 혁명'을 '배움 혁명'으로 바꾸자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5.23 11:3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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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시대 정신...‘배움의 시대’에도 ‘주어진 물음’에 답해야 할까?

일정 수 불량 등급 받도록 설계된 교육..."책임은 언제나 학생에게"
획일적 교육에서 '개성 키우는 배움'으로 전환할 때
남의 옷 '교과서' 벗고, 내 옷 '배움책' 만들어야

오늘날 교육 기관과 단체,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에 관련한 많은 사람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고자 노력하지만 좀처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에듀인뉴스>는 “교육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학교 운영 틀이 지닌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서울 경기고 교사)과 함께 문제를 검토해보고자 ‘김두루한의 배움 혁명’ 연재를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연재순서 ①[시대 정신] ‘배움의 시대’에도 ‘주어진 물음’에 답해야 할까?/ ②[관점] 가르침(교육)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③[배움권] 가르침(교육)을 받는 것보다 배움을 누리는 게 권리!/ ④[학력] ‘아는 배움’보다 ‘할 줄 아는 배움’으로/ ⑤[고교 학점제] ‘교과목’보다 학생 ‘관심사(주제)’를 배워야!/ ⑥[수업-평가] 국바(IB) 도입보다 찍기(선택형)시험부터 버려야!/ ⑦[대입  전형] 얼치기 ‘대학수학능력’보다 ‘고교졸업자격’을 길러야!/ ⑧[학생부] ‘학교생활’보다 학생 삶이 드러나게 기록하자/ ⑨[학교 운영] ‘행정’보다 ‘수업, 상담’을 지원하는 학교 틀로 바꾸자/ ⑩[교사] 스스로 배움의 본보기가 되는 ‘혁명가’로 거듭나자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교육'이란 단어에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려면 지금 ‘교육 현장’을 봐야겠죠. 학생들이 저마다 발표, 토의, 토론, 논술, 실험, 체험 등의 재미난 활동을 하고 있나요? 아직도 ‘주입식’ 강의 위주 ‘진도 빼기’ 수업은 여전하네요. 아무래도 거의 모든 중등학교는 등급내기, 줄 세우기 결과 시험에 얽매어 있죠.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시험을 치르니 학생끼리 서로 배움을 나누는 수업도 어렵고요. 배움 과정에서 과정(수행) 평가로 살맛을 느끼고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돕지만 정작 학생, 교사 다 보람이 없어요. 사교육은 기승을 부리고요.”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 당국, 관련 단체마저도 저마다 품었던 생각이나 기대, 희망은 사라진 채 ‘교육’이란 ‘희망 고문’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듯합니다.

도대체 왜 ‘교육’에 희망이 없을까요? 제대로 ‘교육’의 뜻을 묻지 않았고, 더욱이 칸막이 교과목의 주입식 강의와 오직 주어진 물음에 답해야 하는 일제고사 ‘시험’의 틀이 지닌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 방안을 이제라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더 이상 ‘교육 혁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말은 일본 ‘교육칙어’에서 빌린 말

‘교육’이란 말은 동아시아에서 멍쯔(기원전 372~289)가 군자의 즐거움 세 번째로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得天下英材而敎育之三樂也-맹자 ‘진심장’(盡心章))’라 말한 데서 나온 듯합니다. 천하의 훌륭한 인재를 얻어 이들을 ‘가르쳐 기름(교육)’이 즐겁다는 것이겠죠.

서유럽에는 에듀케이션(Education)과 페다고지(Pedagogy)란 말이 있습니다. 각기 아이가 지닌 숨은 힘을 밖으로 이끌어 낸다는 뜻과 학교, 박물관, 체육관, 유적지 등 보이는 문화유산을 찾아 설명을 들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익히도록 이끈다는 뜻이죠.

그런데 오늘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삶을 가꾸며 쓰고 있는 ‘교육’이란 말은 "먼저 인민에게 국사·국어·국문을 가르쳐야 합니다"(先敎人民以國史及國語國文事)라 한 박영효 건백서(1888년)를 참조할 때 일본이 ‘교육칙어’(1890)에서 내세운 말을 빌린 듯합니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입김으로 1894년 7월 예조를 없애고 학무아문을 둔 뒤 1895년 2월 ‘조서’-이만규가 ‘조선교육사’(1947)에서 ‘교육입국조서’라 이름 붙임-를 발표한 일이 있죠.

왜 ‘교육’ 받을수록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조선 고종은 조서에서 전통적인 도덕(덕양)에 지식(지양)과 체력(체양)을 보태 교육의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널리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기르겠다고 했습니다. 1895년 그해 4월의 한성사범학교 관제와 7월의 소학교령(1906년 8월 보통학교령 이전까지)을 내렸고 뒤에 칙령(1899년)을 내렸고 이듬해 중학교가 세워졌죠.

오늘날 쓰는 ‘교육’은 아무래도 ‘1차 조선교육령’(1911~1922) 뒤로 널리 쓰이게 된 듯합니다(2차 조선 교육령 시기(1922~1938), 3차 조선 교육령 시기(1938~1945)). 이때부터 ‘학교 교육’은 일본 것을 본뜨고 흉내 낸 교육과정, 교과서로 진행했죠. 학교생활에서 ‘교육과정’, ‘교과서’, ‘수업’, ‘고사(시험)’의 형식으로 강요당하는 교육, 억지와 거짓 그리고 따라 배움은 곧 ‘일본 닮기’였죠. 박영효가 ‘인민이 청국을 근본으로 삼아 중시하면서 제 나라 제도는 알지 못한다’고 했으나 그가 걸은 ‘배청부일’의 길에서 보듯이 ‘식민교육’으로 ‘우리’를 버려 생각하기 싫어하는 바보가 되었습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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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뿌리 뽑는 학교교육..."배움 누리도록 도와야"

누군가를 위해 바로 그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권리와 의무를 느낀다면, 그것은 ‘교육적’ 태도입니다. 약 250년 전 프로이센에서 비롯한 ‘근대 학교’의 교육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이상이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글에서 다섯 가지 인간상 중의 마지막으로 규정한 것에서 알 수 있죠. 이것이 학교 제도가 아이들의 개성을 뿌리 뽑게 된 연유입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여러분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웠나요? 그동안 ‘교육’이란 이름으로 학교가 ‘생각하는 배움’을 몹시 해쳐 온 것은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학교의 불합리한 규율로 가르쳐 온 ‘교육(가르침)’이란 억지 배움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배움터에서 참배움꽃을 피우기 어려웠던 까닭은 교육부로 대표되는 국가 권력(정부)이 ‘교육과정’을 쥐고 ‘대학입시’로 옭아맨 채 ‘국·검정’ 교과서를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획일적인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고받았다고요? 강제로 부추기고 강요하는 ‘억지 배움’인 가르침(교육)을 아무런 성찰 없이 반복하는 일은 ‘미친 짓’-아인슈타인-이 아닌가요?

‘교과서’ 버리고 시대 흐름에 맞는 ‘배움책’ 만들어야

이른바 ‘학습부진아’는 왜 생기며 굳이 사교육을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3학년을 살펴보니 교과학습 내용이 학문용어 중심으로 체계적이지 않고 어렵기만 합니다. 조작, 감각 체험,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자라는 3학년 아이들은 기 가족과 이웃을 벗어나 동네를 이해하는 단계인데도 세계지리에 관한 내용이나 어려운 개념어가 나옵니다.

하지만 디지털내기인 요즘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배움책’이 필요할까요? 교육부도 전자(디지털) ‘교과서’를 만들었다 하는데, 이젠 학생들의 궁금증을 바탕으로 전자 배움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가정에서 교과서 내용을 모른다는 아이를 탓하는 게 부모 노릇은 아닙니다. 어느 곳이나 화면에서 개인 식별팔찌만 갖다 대면 나만의 배움 활동 등 개인 디바이스가 저장되는 클라우드 기반의 환경을 누리는 자녀들입니다.

높은 수준의 경험이 쓸데없는 선행 학습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저마다 맞춤형으로 ‘배움책’을 제공하고 능력에 따라 다른 내용의 ‘바탕글’을 제시해야합니다. 우린 당국에 체계적이지 않고 어려운 ‘교과서’를 더는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유튜브를 비롯한 ‘배움책’을 만들게 도와야 합니다.

학생 관심사(주제)로 창의융합형인재를 길러내자

“정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생각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교육,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한 가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각이나 어떤 주제를 던져주면 자기 나름의 자료를 모아서 새로운 것들의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융합형 인재입니다. 이런 인재를 기르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 교육부 남부호 장학관(현 대전교육청 부교육감)

이처럼 어떤 주제를 던져주면 자료를 모아서 새로운 것들의 가치를 만드는 창의융합형인재를 대한민국 배움터(학교)에서 어떻게 기를수 있을까요?

‘융합교육의 허상’을 운운하는 ‘교육학자’들은 대학의 교육학과에서 주제(통·융합)를 다루지 않는 칸막이식 접근(교육철학 및 교육사, 교육심리, 교육과정, 교육사회학, 교육평가 등)이 문제임을 성찰하고 당장 혁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초·중·고 현장에서 배움 현장을 혁신하려는 교사라면 ‘강 건너 불구경’하기보다 새롭게 물어야 합니다. 왜 ‘핀란드인’들이 모든 교과를 없애고 오로지 ‘주제(프로젝트) 중심의 배움과정’을 선택하게 됐는지를요. 사실 누구든 숱한 세상일을 두고 저마다 관심사(호기심, 질문)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을 주제로 탐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행복 교육은 고발당할 것"

제4차 산업혁명에 따라 뿌리(근본)부터 바꾸자는 ‘교육개혁’ 요구가 커졌죠. 교육부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비롯해 자유학년제, 고교학점제, 과정 평가 등을 내세우고 추진합니다. 또 ‘배움을 즐기는 행복교육’을 내세웠고요. 하지만 ‘행복’을 ‘교육’에다 억지로 끌어다 붙여 쓴다고 학생들이 ‘배움’을 즐길 수 있을까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된 대입 제도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전과 달리 행복해질지 의문입니다.

‘교육’은 처음부터 일정 수의 학생들이 불량 등급을 받게 되어 있는 과정입니다. ‘교육’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교환가치)이라 ‘내 돈 내고’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하고 있죠.

‘고발당한 학교’ 움그림(동영상)에서 보듯이 ‘행복교육’은 고발당할 것입니다. ‘상대평가’로 비교하면 ‘일정 수의 패배자’는 ‘실패자’로 낙인찍히며 ‘불량품’이나 ‘함량 미달 학생’의 등급을 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머리가 나쁘다’, ‘노력을 덜 했다’, ‘상대평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그 책임은 학생(배움이)에게 돌립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의 고통을 외면해야 합니까?

(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배움의 시대,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소통'과 '어울림' 즐겨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수능이나 학교 정기고사 같은 일제고사를 왜 봐야 할까요? ‘배움의 즐거움’을 뒷전으로 한 채 말입니다. 일제히 결과 위주 ‘고르기(선택형)’ 지필 시험을 보면서 학생, 교사, 부모, 시민사회가 모두 ‘입시타령’을 하는 일이야말로 ‘시대착오’가 아닐까요?

솔직히 학교 폭력의 뿌리인 ‘교육 적폐’는 ‘지필 고르기(선택형) 시험’일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행복 배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문제를 ‘교육’으로 풀려하다 보니 배움 관점에서 ‘시험’의 틀을 바꾸자는 말은 않더군요.

예컨대, 수능 국어 바탕글 위에 쓴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란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소통을 매우 위태롭게 만들고 사람들을 해롭게 한 대표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엇이든 ‘그냥(걍~)’이라 말하면서 제 생각을 말할 줄 모르게 했으니까요.

‘유연한 머리’로 정보를 편집해야 하고 협력이 필요하다는 21세기 ‘배움의 시대’, ‘정해진 답’이 아닌 ‘새로운 답’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선 모두가 끄덕일 답을 만들어 내는 힘도 기르고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왜 ‘다음 글을 읽고 요약한 뒤 제 생각을 말하시오(쓰시오)’를 하지 않죠? 이젠 적어도 묻고 답하며 읽고 쓰는 소통과 어울림을 즐기며 표현할 수 있는 배움을 말해야죠. 정답은 조합 방법에 따라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니 이제 저마다의 답을 놓고 서로 배움으로 함께 ‘새로운 답’을 찾는 ‘배움 혁명’이 필요합니다. 정한 장소에 ‘퍼즐’ 맞추기보다 ‘레고 블록’으로 새롭게 조립해 내듯이 말입니다.

참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 소장/ 서울 경기고 교사

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소장(경기고 교사, 문학박사)은 열린시대교육개혁론(이서원, 1996)을 펴냈으며 앎의 두루퍼짐과 겨레 하나됨이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가꾸려는 뜻을 지니고 1987년 한양여고에서 교편을 시작한 뒤로 33년째 교직에 종사 중이다.

한국인격교육학회 부회장, 한글학회 평의원, 한국어정보학회 이사, 한국교육철학학회 회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전교조 부설 참교육연구소 중등새로운학교연구실장을 지냈다. 2012년부터 참배움학교연구회를 조직해 매월 참배움이야기마당 등 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2017년 이후 참배움연구소로 개편해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교운영체제(교과체제), 고교학점제, 대입전형, 과정(수행)평가 등의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하며 최근 고교주제학점제 실행방안(2018), 배움과 성장이 있는 교사의 삶 가꾸기(2018), 제4차 산업혁명시대 중등학교에서 사람다움(인성)기르기(2017), 정보 시대 생각하는 참배움의 뜻과 길(2017) 등을 발표했고 현재 ‘배움혁명’(2019)을 출판 준비 중이다. duruhan@hanmail.net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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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2019-05-24 17:20:17
(1) 초중고를 다니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성실하게 익혀 세상을 살아보겠다고 마음먹고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고 익히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오랜 세월을 살면서 그때 익힌 태도들 때문에 오히려 상황에 대처하기 곤란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그 원인이 예전에는 신성한 낱말로 여겨 더 이상 파고들어 따져보지 않았던 교육이란 말 속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의 시작과 "학교"를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스며든 '교육'이란 말의 출발점이 글 속에 쓰신 이런 것이었다면 말이죠.


"학교생활에서 ‘교육과정’, ‘교과서’, ‘수업’, ‘고사(시험)’의 형식으로 강요당하는 교육, 억지와 거짓 그리고 따라 배움은 곧 ‘일본 닮기’였죠."

이동수 2019-05-24 17:13:32
(2)
"교육"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과 그것을 넘어서는 "배움"이 어떻게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전해질지 이어지는 글들을 통해 밝혀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미 "교육"을 받은 우리가 익힌 습성에서 어떻게 벗어나 우리의 어두운 면을 뒷 세대에 전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미 긴 시간을 살아버린 기성 세대도 함께 변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사는 세상 전체가 좋은 모습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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