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던타임즈

[에듀인뉴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도 가슴이 뭉클한 영화 찰리 채플린 주연의 <모던 타임즈>가 떠오른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나사못 조이는 일을 하는 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여버리는 강박 관념에 빠지고만 찰리는 급기야 정신 병원에 가게 되고, 거리를 방황하다 시위 군중에 휩쓸려 감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몇 년 후 감옥에서 풀려난 찰리는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한 아름다운 소녀를 도와주게 되고, 그녀의 도움으로 카페에서 일하게 되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만다.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찰리와 소녀의 행복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 

이것이 산업화, 기계화, 자동화 시대에 피어난 진정 사람 사는 모습의 단편이다. 시대가 변해도 그 중심엔 언제나 인간이 있고 또 인간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 칭한다. 이 용어를 가장 특징짓는 말은 바로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라 할 것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여 인터넷, 통신기술 등의 발달에 따라 네트워크로 사람, 데이터, 사물 등 모든 것을 연결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 정보 기술이 깊숙이 들어오면서 모든 사물들이 거미줄처럼 인간과 연결되어있는 사회가 되면서 센서 기술과 데이터 처리 기술 발달로 많은 데이터들이 수집되고 스마트폰 보급으로 개인을 둘러싼 네트워크는 점점 더 촘촘해졌다. 

또 사물인터넷(IoT), 만물인터넷(IoE) 등을 기반으로 스마트홈, 스마트카 등이 편리한 문명을 이끌고 있다. 그뿐인가.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들은 방이나 자동차 등 소위 유휴 생산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여 대중에게 편리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에게는 ‘최신의 앞선 기술’도 중요하지만 사생활 보호와 새로운 윤리, 질서 규범 정립 같은 풀어야 할 숙제도 함께 늘어났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서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감염병과의 전쟁을 치르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국가마다 이를 잘 추적하고 통제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는 기대와는 다르게 방역 조치가 미진하여 악화일로를 걷기도 한다. 

서양의 많은 국가가 후자에 가까운 현상으로 이미 세계적 대유행인 팬데믹(pandemic)의 처절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 6월 30일 기준으로 세계적으로는 확진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50만명을 초과하여 4.88%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1만2000여명의 확진자와 282명의 사망자가 나와 치사율은 2.44%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 최고 선진국인 미국은 확진자가 260만명을 넘고 사망자는 12만명 이상으로 증가하며 4.8%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간의 차이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최근 중앙일보 기사(2020.07.01.)에 의하면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는 노암 촘스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왼쪽부터 노암 촘스키, 최재천 교수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촘스키 교수의 e메일엔 신종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한국의 추적·공개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촘스키는 “한국의 시스템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최 교수는 “동선공개 시스템 등 덕분에 한국에서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두 사람은 몇 차례 설전을 주고받았다 한다. 두 석학에게서 보듯이 이는 동서양의 문화차이에 의한 글로벌 가치관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코로나19은 우리에게 일상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뉴노멀’의 생활방식이다. 이로써 우리의 관심은 소득이나 성장보다 안전과 건강, 그리고 여유로운 삶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되자 관계의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라는 현상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인한 심리적 치유가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동체 문화의 결속이 해결책의 하나다. 즉,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리적 거리 좁히기로 연결되어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미국으로부터 훈훈한 공동체 소식이 사례로 전해온다.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거부하자 당사자로부터 온갖 비난과 협박이 이어졌으나 다른 고객들은 오히려 이 종업원에게 $92,000(약 1억원)이 넘는 감사의 팁(tip)을 모아 주었다’고 한다.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로봇과 같은 기계문명의 혜택과 동시에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배려하며 가족처럼 정을 돈독히 연결하는 공동체 정신이 필요하다. 

이것이 초연결사회에서 바로 인간에게 필요한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사랑이다. 서두에서 촘스키 교수가 염려한 개인의 인권만큼이나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신뢰에 의한 인간의 사랑이 물 흐르듯이 서로의 가슴에 촘촘히 그리고 따뜻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제언으로 다시금 위의 동(同)기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첨언해 보고자 한다. 

정부가 문화예술과 체육 활동을 통해 심리적 불안을 치유하고 ‘문화적 돌봄’으로 삶의 관계망을 회복시키는 ‘문화·사회 안전망’을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조금 일찍이 2018년 영국 정부는 외로움을 건강과 복지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외로움 담당 장관(문화부 장관 겸임)을 임명해 ‘외로움 해결 국가 전략’을 수립했다. 

그 일환으로 ‘사회적 연결 전문가’ 1000여명을 배치해 사회적 고립 상태의 주민을 지역사회의 문화예술·체육 활동 등과 연결하는 사회적 처방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우리도 이와 같은 ‘문화 돌봄 전문가 파견’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예술 치료나 치유 여행 같은 문화 활동은 심리적 불안과 육체적 피로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의 고립감과 우울감을 감소시키고 문화예술 콘텐츠 생산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더불어 언택트(untact) 시대에 맞춰 온라인상에서 문화의 창작·향유가 가능한 환경을 더 조성해 음악, 미술, 공연, 전시, 인문, 관광 등 다양한 콘텐츠가 활발히 제작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문화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인·장애인 등을 지원하는 따뜻한 기술 등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인간을 중심에 둔 인간의 사랑에서 나오는 당연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 것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덩달아 심리적 소원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과 우리 고유의 ‘정’문화를 활성화하고 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이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촘촘하게 연결하여 사람을 위한 기술로 활용되는 정책으로 향하는 인문학적 담론과 사회적 논의가 확장되어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처럼 사람 사는 세상,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기술은 인간이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운영하는데 달려있다. 여기엔 나눔과 배려와 소통을 통한 공감 사회, 포용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여된 과제이자 나아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위대한 처방이라 생각한다.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
전재학 인천 제물포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