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픽사베이)
(이미지=픽사베이)

[에듀인뉴스] 얼마 전 초등학생 사이에서 ‘사는 곳’이 놀림거리라는 기사가 나왔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주거 형태나 부모의 월 소득에 따라 비하 표현들을 쓰고 있다는 얘기였다. SNS에서도 몇몇 교사들은 이 기사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이 정도까지 오게 된 현실을 탓했고, 어떤 이는 어른들의 잘못이라며 탓했다. 다른 이는 자신은 학생들이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기사가 오히려 이런 혐오표현을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대개 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단어를 들어본 적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하기보단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이 상황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학생 중 어느 하나가 저런 단어를 썼을 때, 교사가 예민하게 발견해내지 못한다면 학생 전체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혐오 표현이나 비하 발언에 대해 우리의 자정능력은 생각만큼 좋지 못하다. 전체에 퍼진 뒤에 손을 대려고 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학생들간에 거주 아파트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서로를 비하하는 모습을 보기도, 듣기도 했다.

어떤 학생들은 정말 아무 뜻 없이 써왔지만 또 다른 학생들은 알면서도 써왔다. 엄연히 언어 폭력상황이므로 지적했지만,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써오던 말이라며 항변했다.

학생들에게 교육을 했지만 이미 사용하고 써왔던 언어들을 갑자기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고운 언어 쓰기 캠페인, 욕설 및 비하에 대한 학생 토론, 어울림 프로그램 등 다양한 학내 프로그램을 실시했지만 학생들의 언어와 생각을 바로잡는데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돈이나 집 문제가 아니더라도 학교에 혐오표현이 들어온지는 꽤 되었다. 교사들이 듣지 못할 뿐 학생들은 서로 나쁜 언어로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그런 표현에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을 ‘강철멘탈’이라고 포장하고, 상처를 받는 학생을 ‘유리멘탈’이라며 다시 놀린다.

그러나 혐오표현을 들을 때 겉으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강철인 것도, 상처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리인 것도 아니다.

혐오표현은 이미 듣는 순간 큰 상처고 그렇기에 폭력이다. 

이런 혐오표현을 접하는 곳의 창구는 정해져있지 않다. 초등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에서조차 채팅창에서는 난리도 아니다. 게임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핸드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SNS나 커뮤니티에서도 성년과 미성년은 구분없이 소통한다.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친구가 배워서 친구들 사이에서 퍼진다. 학생들은 가치에 대한 안전망이 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언어를 배운다.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교사의 교육방법이나 내용에 제약이 점점 들어오면서 교육상황인데도 애써 외면하고 지도를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언어 폭력은 더욱 그렇다. 발견해서 지적하려고 하면 이미 서로 간에 오래 써와서 내성이 생긴지도 오래다.

그러나 올바른 언어 사용에 대해 교육하지 못한다면 더 큰 폭탄으로 돌아온다. 그럴려면 교사들도 무심코 넘어가는 단어들을 미리 공부해야한다.

가끔 학생들끼리 언어로 다퉈댄 경우 교사가 지도할 때 교사는 학생들의 언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도대체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다툰 내용을 부모에게 알리기 위해 전화로 말할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잘못된 언어를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미리 알고 있을 때, 그리고 이와 관련된 유사표현을 짐작할 수 있을 때 학생들의 언어 사용을 고쳐주고 지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에듀넷 도란도란이 사이트 개편 등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좋은 모습이다. 교사들과 적극적 소통을 통해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료를 수집하고, 이런 자료를 일반화시켜서 다시 학교로 제공할 수 있는 공조가 필요하다. 이제는 교육이 언어 표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때다.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
김승호 청주외고 교사/ 에듀인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