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종 프랑스 건축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 새로운 건축에 담긴 삶의 철학

[에듀인뉴스] "저희는 프랑스 파리에 사는 행정가, 건축가, 예술가, 보건전문가, 경영전문가, 평범한 직장인과 유학생입니다. 언젠가 자신의 전공과 삶을 이야기하다 한국의 많은 분과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전공과 각자의 철학과 시선으로 느끼고 바라본 프랑스의 이야기에서 시사점을 얻어가길 바라며 프랑스의 한국인 이야기를 관심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에듀인뉴스] "그것 참 모던하다!’"

거리나 TV에서 보면 모던스타일, 모더니즘 등의 표현을 쉽게 접하는데, 과연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사전에서 Modern은 ‘현대의’, ‘근대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최신의’, ‘새로운’, ‘선구적인’이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흔히 잘 절제된 양식의 그림이나 인테리어, 헤어스타일, 옷 스타일을 보고 모던하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 표현이 전부 옳은 표현일까?

건축을 하는 사람이든 안 하는 사람이든 한번은 들어봤을 건축가의 이름이 있을진대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제(Le Corbusier)다. 근대 건축이나 모더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면 꼭 만나게 되는 이 불세출의 건축가는 기존의 건축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건축은 벽이 구조체로써 자유롭지 못한 건축이다. 돌을 쌓거나 벽돌을 쌓아 만드는 양식(조적식)의 벽은 건물을 지지하는 구조적 역할을 감당하였기에 두터운 벽, 작은 창, 그리고 각 층마다 똑같은 평면을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물에 멋을 내는 것은 공간자체에 대한 멋이라기 보다는 벽에 장식을 조각하거나 꽃을 내걸거나 하는 정도였다.

도미노 시스템 (Domino system).(출처=https://www.dezeen.com/2014/03/20/opinon-justin-mcguirk-le-corbusier-symbol-for-era-obsessed-with-customisation/)
도미노 시스템 (Domino system).(출처=https://www.dezeen.com/2014/03/20/opinon-justin-mcguirk-le-corbusier-symbol-for-era-obsessed-with-customisation/)

이런 건축양식이 즐비한 가운데 스위스 태생의 한 건축가가 혁신적인 건축 시스템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도미노 시스템(Domino system)이다.

이 시스템은 기둥과 계단과 슬래브(바닥판)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조다. 보기에도 얇고 가는 이 시스템은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심어 기존의 두꺼운 벽으로 쌓아 올린 건물보다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를 자랑한다.

어디 그뿐인가, 벽은 더 이상 건물을 지지하기 위한 구조체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르꼬르뷔제는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며 그 시대에 맞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기에는 기존 건물은 한계가 있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도미노 시스템과 예전 건축 시스템을 비교하였다.

과거의 건물과 도미노 시스템을 비교한 꼬르뷔제의 드로잉.(출처=https://classconnection.s3.amazonaws.com)
과거의 건물과 도미노 시스템을 비교한 르꼬르뷔제의 드로잉.(출처=https://classconnection.s3.amazonaws.com)

르꼬르뷔제가 접한 새로운 시대는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감상적이고 정적인 삶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형태로 바뀌어 나가는 시대였다. 이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확실한 채광과 효율적 동선, 거기에 원하는 건물의 형태를 자유롭게 결정지을 수 있는 구조라 생각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세상에 내어 놓으며 르꼬르뷔제는 새로운 건축의 5가지 원칙을 내놓는다.

첫째, 필로티를 두어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둘째, 벽은 얇고 자유로워야 하며 셋째, 채광을 위한 수평으로 긴 창을 내어야하고 넷째, 각 층의 평면은 서로 다른 구성원에 맞는 자유로운 평면 이어야 하며(각 층의 평면이 모두 다르다) 다섯째, 옥상에 정원을 두어 건축이 자연에 직접 반응하도록 해야한다.

근대 건축의 5원칙 스케치.(출처= https://lh3.googleusercontent.com/-QlxITf0IKUs/TXBlzMGGpXI/AAAAAAAAAD4/zHtukBw54h4/s1600/le-corbusier-five-points-of-architecture0001111.jpg)
근대 건축의 5원칙 스케치.(출처= https://lh3.googleusercontent.com/-QlxITf0IKUs/TXBlzMGGpXI/AAAAAAAAAD4/zHtukBw54h4/s1600/le-corbusier-five-points-of-architecture0001111.jpg)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접하는 건물과 상당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모든 내용이 지금까지도 다루고 있는 건축의 일부가 아닌가. 이미 이 시스템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에 만들어 졌는데 말이다.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 근대건축 5원칙을 이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똑같은 평면의 아파트 2. 똑같은 입면의 주택 3. 옥상엔 정원을 대신한 흡연공간 4. 모니터 불빛을 위해 가려진 창문 5. 빨리 먹고 나가기 위한 일층에 즐비한 식당.

100년 전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같은가? 우리는 여전히 100년 전에 만들어진 시스템에 학습되어 나의 삶을 담는 공간을 바꿀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시대를 내다보는 눈을 잃은 채 내 앞에 주어진 일만 해나가며 사는, 어찌보면 사람마저 기계화 된 ‘그때 그 시대의 모던타임즈’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삶과 내가 살고 있는 건축은 모던한가….

유무종 프랑스 유학생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재학중. 프랑스 파리에서 해외 인턴쉽을 마쳤다. 이후 그르노블 Université Grenoble Alpes에서 도시설계학 석사를 마쳤고 파리의 Ecole spéciale d’architecture (그랑제꼴)에서 만장일치 합격과 félicitation으로 건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Arep Group에서 실무 후 현재 Atelier Patrick Corda에서 Junior Architect로 근무중.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우리가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좋은 건축에서 살아야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환경결정론적 해석이 아닌 건물에 담겨진 이야기를 중점으로 칼럼을 쓰고자 한다.

건축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봐도 그렇다. 이 집에 오기까지 가지고 있는 각자의 사연, 집에서 살면서 늘어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들, 우리의 삶은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함께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또 하나의 건물을 중심으로 그 건물과 지역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 주변에 감추어있다. 그래서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건물은 부동산적 소유재산 이전에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담는 그릇이라 여긴다. 따라서 건물을 살펴봄으로 우리는 각 사람의 삶의 형태와 가치관을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다.

앞으로 글에서는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살펴본 여러 공간(건물)과 그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의 정서와 문화를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