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승철의 세계정책여행]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 본 '기회의 평등' 의미
[옥승철의 세계정책여행] 프랑스 혁명으로 돌아 본 '기회의 평등' 의미
  • 정하늘 기자
  • 승인 2019.09.1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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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에 오다

[에듀인뉴스] "20대 때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수용할 만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은 나의 삶과 정책적 철학을 바탕으로 주관적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내 시선이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나름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주관적이고 관찰적인 시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되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객관적 지식 및 데이터는 최소화 할 것이다. 정책가는 좌우 이념의 대립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게 내 신념이다." 젊은이의 눈에 비친 세계. 직접 경험하고 공부하며 깨달은 철학은 무엇일까. <에듀인뉴스>는 새해 첫 연재로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과 함께 떠나는 '옥승철의 세계 정책여행’을 기획했다.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2019년 9월 파리정치대학(SciencesPo)의 수업을 듣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였다. 항상 영어권 국가에 있었던지라 영어가 통하지 않는 새로운 문화를 가진 국가에 간다는 것에 평소답지 않게 긴장되었다. 프랑스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는 나였기에 ‘하나씩 배워나가자’ 하고 생각했다.

프랑스 혁명의 3대 이념은 널리 알려진 대로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박애(Fraternité)이다. 1989년부터 1794년까지 약 5년 동안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세계 3대 시민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신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프랑스를 계급의 상하 구분이 없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인간적인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나라로 다시 세웠다.

프랑스 혁명을 유발한 루이 16세의 치하에서 국민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성직자(제1계급), 귀족(제2계급)들은 프랑스 전 국토의 모든 재산과 땅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세금 대부분은 최하 계급인 평민들이 부담했고 국가 세금은 특권층들을 위해 쓰였다. 이를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구체제)이라고 한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제3계급을 대표하는 일반 시민들은 현재의 체제에 항거하기 위해 국민들로 이루어진 국민의회를 따로 만들고, 헌법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귀족세력과 루이 16세는 군대를 동원하여 국민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 시민들의 승리로 프랑스 혁명은 끝이 났다.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 전경 사진(출처=두피디아)
프랑스 혁명기념일 행사 전경 사진(출처=두피디아)

프랑스 국민들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와 평등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에 영향을 받아 인간존중, 즉 ‘인간존엄’이라는 천부인권사상을 나타내었다. 평등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기회의 평등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들이 말하는 평등은 재산을 나누어 갖자는 소유와 분배의 평등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귀족들이 독차지하는 다양한 기회와 수단들을 평등하게 공유하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저마다 기회의 평등을 가지고 자신의 자아를 이루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국민의회의 봉건제 폐지 법령 중에는 제3조 ‘사냥과 개방 방목지에 대한 독점권도 폐지된다’, 제11조 ‘모든 시민은 출생에 관계없이 성직, 사무직, 군사직의 모든 직무와 위계에 오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예전 프랑스 혁명을 발발하게 만든 요인인 일부 특권층의 계급 형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강남이라는 특권층이 보이지 않은 벽 안에서 지금까지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부와 특권을 대물림하고 살아왔다.

강남으로 이사를 간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남 학부모들은 ‘자녀의 배우자가 강남출신이었으면’ 하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교육 또한 그 철옹성 안에서 서로 비밀을 공유하며, 교육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갖은 수를 써가면서 편법으로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킨다. 그리고는 외부에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정보와 기회의 사다리 꼭대기에 서서 결국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

예전에 성경책 또한 라틴어로 쓰인 탓에 일부 성직자만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특권으로 국민 위에 서서 군림하며 개인은 성경을 소지하는 것도 법으로 금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복음을 깨달을 기회의 평등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예전에는 통하지 않았다.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 ~ 1384년)는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이다. 사진은 존 위클리프 유골을 꺼내 불태워 강에 버리는 장면으로 존 폭스 순교자열전에 실린 삽화.(출처=네이버블로그 '오일레의 철학 카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 ~ 1384년)는 영국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이다. 사진은 존 위클리프 유골을 꺼내 불태워 강에 버리는 장면으로 존 폭스 순교자열전에 실린 삽화.(출처=네이버블로그 '오일레의 철학 카페')

존 위클리프는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영국 기독교 신학자는 로마 교황청의 부패에 대항하기 위해 종교개혁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성경을 평범한 국민들의 손에 쥐어주기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그는 민중들이 복임의 진리를 갖는 기회의 평등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당시에는 성직자라는 특권층만이 볼 수 있었던 성경을 대중을 위한 영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성경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는 특권층의 사다리인 성경을 통해 만인이 평등하게 복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준 민주주의 이념과 상통한다. 그래서 그의 말은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말로 유명한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슬로건을 탄생시킨다.

결국 로마 교황청은 그 책들을 금서로 몰아 많은 저서가 정죄 받았고 그는 이단으로 몰렸다. 그리고 그는 무덤에 안치된 상태에서 유골이 캐내어져 뼈까지 불태워 강물에 뿌려졌다.

지금 우리나라는 소수 특권층이 강남이라는 수도원과 교회, 정보와 돈이라는 성경을 가지고 대다수 국민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 나는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소유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누리고 있는 특권에 대해서도 만인이 평등할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재산을 나눠 가지자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만인이 평등한 기회를 갖기 위해 특권을 타파할 것을 주장한다.

프랑스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민의회는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의 제1조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리고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나며 또 그렇게 존속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동의 유용성에 입각할 때에만 가능하다”라고 되어 있다.

프랑스 시민혁명에서 이루고자 했던 평등, 모두 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누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다. 성경책처럼 어떤 것이 특권층에게만 속해 있지 않고 대중적인 기회를 누구나 원하면 가지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닌가?

또한, 이제 기회의 평등을 이루고 동시에 모든 사람이 그의 환경과 재정적 상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이뤄나갈 수 있는 자유 또한 우리가 이룩해야 할 또 하나의 정신이다.

정하늘 기자  eduin@edui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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