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20대 때부터 세계 여러나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정책적으로 수용할 만한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글은 나의 삶과 정책적 철학을 바탕으로 주관적 관점으로 이루어진다. 내 시선이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나름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주관적이고 관찰적인 시선과 철학을 바탕으로 하되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객관적 지식 및 데이터는 최소화 할 것이다. 정책가는 좌우 이념의 대립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게 내 신념이다." 젊은이의 눈에 비친 세계. 직접 경험하고 공부하며 깨달은 철학은 무엇일까. <에듀인뉴스>는 새해 첫 연재로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과 함께 떠나는 '옥승철의 세계 정책여행’을 기획했다.

(사진=픽사베이)

호주는 유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려면 Foundation Course라고 대학 입학 전에 다녀야 되는 학교가 있다. 나는 시드니에 있는 Taylors College를 다녔다. 1년 코스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유학생들은 1년 동안 영어, 역사, 과학, 수학 등 다양한 과목들을 선택하여 일 년에 4번의 시험을 본다. 그리고 그 시험들의 성적을 평균 내어 들어갈 대학을 정한다.

Foundation course를 거쳐 시드니 대학에 입학하였고 영어가 아직 부족했던 나는 대학 첫 1년 동안 수업을 제대로 못 따라가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 특히 본강의 외에 토론수업은 나를 엄청 힘들게 했다. 현지인들과 같이 토론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나는 교수님을 찾아갔고 토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자 교수님은 영어는 못해도 괜찮으니 미리 공부해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말하라고 하셨다. 현지인들은 영어는 잘하지만 내용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유학생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영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지만 미리 공부하고 자신 있게 토론에 참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당시 내가 공부하던 과는 Economics and Social Science였는데 경제, 정치 등을 가르치는 과였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이나 정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교과서 외에도 수많은 서적을 읽고 공부했다.

영어책이 읽기 어려울 때나 힘들 때는 번역된 책이나 비슷한 내용의 한국 책을 많이 사서 읽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호기심에 더 깊이 파고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에 관해서도 궁금해지고 책을 벗어나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졌다.

대학 입학 1년 후에 2년의 휴학기를 내고 중국과 일본에 갔다. 중국에 간 이유는 중국의 발전하는 경제를 눈으로 직접 보고 중국어도 배우기 위해서였다.

1년 동안 나는 연변과학기술대학, 북경칭화대에서 어학연수를 하였다. 2008년 당시 중국의 물가가 워낙 싸서 오히려 한국에서 드는 돈보다 적게 들었다.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나는 중국에 대해서 배웠고 또한 시간 이 날 때마다 조선족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였다. 많은 조선족 아이들의 부모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떠나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중국교포와 재일교포들에게 연민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동경에 있는 호세이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일본 대학은 특이하게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자신의 학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원할 수 있었다. 나는 호세이대학에 지원하여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에 대한 많은 수업을 들었다. 그 당시 위안부와 독도가 큰 이슈였는데 나는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본의 정치, 역사, 경제, 문화 등의 과목을 수강하였다.

기억나는 수업은 일본의 근대 역사수업이었는데 수업에 외국인이 나 혼자였다. 그 수업에서 나는 실제로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고 위안부는 자발적이며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수업을 직접 보게 된다. 많은 분노가 일었지만 그래도 그들과 많은 토론을 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많이 전달하였었다.

옥스포드 대학교 (사진=픽사베이)

이후 나는 내 진로를 정하였다. 해외에서 사는 것보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직업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려면 일단 군대를 가야해서 28살의 나이에 공군학사장교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장교생활을 하면서 군대에서 추천서를 받고 정식으로 KDI국제정책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2016년 말 나는 제대와 동시에 개발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KOICA 인턴으로 요르단으로 6개월간 떠나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일하였다.

그 와중에 나는 공공정책학을 공부하기 위해 옥스퍼드 석사에 지원하였다. 우리나라를 위해 좋은 정책들을 만들고 싶었다.

옥스퍼드의 공공정책 석사는 지원자를 심사할 때 3가지를 본다. 첫 번째는 성적, 두 번째는 사회공헌, 세 번째는 리더십이었다. 나는 사실 대학교 때 성적이 옥스퍼드를 지원할 수 있는 성적이 되지는 않았다. 4.5점으로 환산하자면 내 성적은 3.5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군 장교 생활을 한 것이 리더십 가산점이 되고 중국에서 조선족 아이들을 위해 일한 것과 일본에서 후쿠시마 난민들을 위해 봉사활동, 그 외 다양한 봉사활동들이 사회공헌으로 인정되어 합격하게 된다. 자소서에 얼마나 그것들을 녹일 수 있느냐에 합격 불합격이 갈린다.

결국 옥스퍼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자체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성적보다는 그 사람의 리더십과 도덕과 윤리적인 모습을 많이 본 것이다. 옥스퍼드에서의 1년간의 배움은 나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특히 정치철학에 대해서 배운 것들은 내가 나만의 정책 철학을 가지고 그 바탕 위에 단단한 정책들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장학금에 대해서 말하지만 영국 석사학위는 Chevening이라는 영국 외무성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다. 7~8월쯤에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학교 자체 장학금도 있으니 금전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일단 모든 노력을 다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싱가포르의 NGO에서 북한연구를, 미국 민주주의 연구소 미얀마 지부에서 미얀마 최초 민주주의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을 위한 공공정책 교재와 커리큘럼을 개발하였다. 그 후 세종시의 국책연구소에서 잠시 일하다가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의 행정학석사를 가게 되었다.

(사진=픽사베이)

원래는 예정에 없는 일이었으나 수많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배출한 대학의 커리큘럼이 너무나도 궁금하였다. 또한 프랑스만의 정치 시스템, 마크롱과 그의 정당, 그리고 남북통일과 연관한 유럽연합 시스템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었다.

프랑스 대학은 일반 대학과 대학위의 대학이라는 그랑제꼴로 나뉜다. 일반 대학은 평준화이지만 그랑제꼴은 각 분야의 최고 학교를 칭한다. 나는 정치 그랑제꼴인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하였다. 프랑스 인이라면 들어가기 힘들지만 유학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자소서를 최대한 잘 준비하면 무리가 없으며 영어로 수업하는 곳이 많아 프랑스어를 못해도 입학할 수 있다.

프랑스 장학금에 대해 설명하자면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캠퍼스 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프랑스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종류의 장학금을 지원할 수 있으며 각 학교마다 제공하는 장학금이 있다. 나 또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명문대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한가지다. 공부를 못한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이타적인 마음 하나만은 20살 이후 내 신념으로 만들어 실천하며 살았다. 

하버드 대학과 미국의 유명 대학들 또한 이제 학생의 성적보다는 그 학생들의 삶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특히 사회와 남을 위해 얼마나 이타적으로 살았는지 평가한다고 하는데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살겠다는 진실된 마음과 신념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실천한다면 좋은 대학은 당연한 보상으로 따라 올 것이다.

리더십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나를 공군장교로 이끌었고 나는 즐겁게 내 소임을 다하였다. 운이 좋게도 소위 때부터 중대장의 역할이 주어졌고 이는 옥스퍼드에 지원할 때 리더십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돈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라. 옥스퍼드 공공정책 120명 동기 대부분이 가난한 나라 출신이었다. 대부분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닌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다. 일등을 하거나 공부로 주목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초중학교를 신갈이라는 그 당시에는 시골학교를 나왔고 수원의 평범한 고등학교를 다녔다. 외고와 자사고를 나오고 영어와 공부를 엄청 잘하는 학생들만 해외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와 비슷한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필요한 것은 의지와 신념이다.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
옥승철 한국청년학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