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

"우리에게 배움이란 무엇인가"

[에듀인뉴스-명교학숙 공동기획] 학생들의 인성교육 방향 정립을 위해 고전(古典)을 활용한 교육이 떠오르고 있다. ‘명교학숙’은 이러한 교육계의 움직임을 리드하는 초·중등교사 연구모임으로 동·서양 인문고전을 탐구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교육방법론을 연구하고 있다. <에듀인뉴스>는 명교학숙과 함께 고전을 통해 우리 교육 현실을 조명하고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주, 아시아를 그리다 전시작품(사진=정호영 비영리활동가)
제3회 '제주, 아시아를 그리다' 전시작품(사진=정호영)

우리에게 배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해야 한다. 배움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품은 씨앗들이 매일 시끌벅적한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진정한 배움의 모습 아닐까. 배우며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매 순간 깨닫는 아름다운 성장 과정이다. 자신다운 빛깔과 방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삶을 그려내는 일이다.

배움이 멈추면, 결국 삶도 멈춘다. 그런 배움을 청소년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미래학교의 모습을 꿈꾼다.

내가 꿈꾸는 미래학교는 이런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청소년들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자신의 꿈(Dream)과 재능(Talent)과 품성(Character)을 좋은 가치(Good Value)와 미덕(Virtues) 안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 세상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또한 3가지 선한 가치인 진리, 사랑, 용기와 8가지 미덕인 정직, 동정, 용맹, 정의, 희생, 명예, 영성, 겸손 안에서 자신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 학교이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청소년미래학교의 모습이며, 사람을 중심으로 디지털기술과 아날로그 기술이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 기반의 플랫폼학교이다. 나는 이를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유스클라우드(Youth Cloud) 플랫폼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누구의 통제도 없이 자신의 꿈과 재능을 시공을 초월해 무한히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청소년 헌장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갈 권리를 가진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

청소년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로운 공동체의 성원으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간다.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국가는 위의 정신에 따라 청소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청소년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한다.

이런 선언적 의미를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유스클라우드의 방향이자 가치이다.

청소년미래학교플랫폼인 유스클라우드는 꿈의 강연을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해 보고, 자신의 삶의 가치와 비전을 담은 TED형 강연을 직접 제작해 다양한 SNS 채널 공유를 통해 청소년 드림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나의 꿈을 넘어 우리의 꿈을 만드는 청소년, 자신의 진로와 비전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의 꿈의 강연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꿈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절대 매일 꿈꾸는 것을 멈추지 마라. 좋은 것은 더 늦게 오는 법이다.

지난 시간의 실패와 좌절에 주눅 들어서도 안 되며,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매일 꿈꾸는 것을 게을리해도 안 되고 오늘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방심해서도 안 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게 아름다운 삶이다. 내가 꿈꾸는 학교는 낡은 패러다임을 과감히 던지고 세상에 없는 ‘오늘이 신나고 내일이 행복한 청소년미래학교’이다.

이 학교를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물론 개인이든 국가든 그만큼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지만, 원하는 대로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잘 짜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창조는 파괴에서 시작된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이든 사회든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뜻한 껍질을 벗고 혹한의 추위에 눈바람을 맞는 일이 어찌 쉬울까. 낡은 것에 대한 결별, "틀에서 벗어나라고?" 틀을 아예 부숴 버리고 다시 창조하라! 이 말이 나에게는 늘 화두다.

모두가 철인 3종 경기를 잘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철인일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속도와 깊이, 빛깔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꽃다운 시절 그 꽃이 쉬 꺾이고, 뿌리를 튼튼히 내려야 할 화려한 시절에 뿌리를 몽땅 썩게 하는 지나친 속도경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서로가 어깨동무는 못할지언정 조금은 천천히 함께 걷고 가끔은 쉬어가자.

잠시 템포를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가자. 우리가 가진 풍부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잘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모두가 자신만의 빛깔로 온전히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바로 모두가 빛나는 삶을 위해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천천히 더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그게 바로 나다운 삶이다. 우리다운 삶이다.

오늘 함께 걸어온 사람이어야 비로소 내일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오늘을 묻으면 어찌 내일로 향하겠는가. 오늘을 섬겨야 내일을 얻을 수 있다. 지금 하지 못한 일들을 어찌 내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늘 작은 물꼬를 터야 비로소 내일 더 큰 강을 만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철학자, 시인, 음악가, 문헌학자, 문화비평가, 심리학자, 계보학자, 미학자로 분류된다.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대륙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설명=나무위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 W. Nietzsche, 1844~1900). 독일의 철학자, 시인, 음악가, 문헌학자, 문화비평가, 심리학자, 계보학자, 미학자로 분류된다. 특유의 급진적인 사상으로 대륙철학,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설명=나무위키)

그럼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초인, 권력의 의지, 영원회귀 철학사상을 설파한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지금까지 모든 인간들은 스스로를 초월하여 무엇을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그대들은 이 위대한 밀물의 썰물이기를 원하며, 인간을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진심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가?

인간이 보기에 원숭이는 어떤 존재란 말인가? 웃음거리 뿐 아니라 고통스러운 수치일뿐, 그리하여 초인에게도 인간은 역시 웃음거리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수치를 뿐이로다.

그대들은 벌레에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 왔노라. 그러나 그대들 속에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남아 있도다. 그대들은 일찍이 원숭이었노라. 그러나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송이보다도 더한 원송이니라.

그대들 중의 가장 현명한 자라고 할지라도 식물과 유령과의 얼치기 존재, 또는 잡종에 불과하노라. 그러나 내 어찌 그대들에게 식물이나 유령이 되라고 하겠는가?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리라. 초인이란 대지의 참뜻이로다. 그대들의 의지가 말하게 하라. 초인이야말로 대지의 참뜻이 되어야 한다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차라투스트라' 머리말 중에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그 의미의 답을 니체에게서 찾으려면, 우선 니체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니체는 독일 작센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다섯 살 때에 아버지를 잃고 여자들만 있는 외갓집에서 자라는 바람에, 여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고교 시절부터 본(Bonn)대학의 신학과를 뛰쳐나와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사서, 꼬박 2주 동안 읽고 나서는 철학에 빠져든다.

이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그리스의 고전 문화에 몰두했고, 군대에 근무하다가 말을 타던 중에 다쳐 곧 제대했으며, 스승인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물네 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고전어 교수로 초빙되었다.

1870년에 전쟁이 일어나 위생병으로 지원했다가, 심한 이질에 걸려 곧 제대했다. 그리고 난 후에 건강은 계속 나빠지기 시작했다. 1889년 그는 투린에서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켜 길거리에서 쓰러졌고, 이에 대해 예나대학병원은 진행성 마비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 후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혼수상태에서 고통받다가 20세기가 시작되는 1900년, 끝내 세상을 떠났다. 니체는 죽기 전까지 최고의 역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포함해서 '니체 최후의 고백',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권력에의 의지' 등이 많은 명저를 남겼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영원회귀 사상이 나온다. 니체의 공상적인 관념으로 생(生)은 원의 형상을 띠면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고, 피안의 생활에 이르는 것도, 환생(還生)하여 다음 세상에서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는 것도 모두 부정하고, 항상 동일한 것이 되풀이된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현실의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만을 충실하게 생활하는 데에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태도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이는 니체의 초인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고독한 존재이며, 고통받는 존재이다. 기존의 관념과 우상을 벗어던진 존재이다. 주체자로서 자신과 외롭게 싸우는 존재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와 투쟁하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삶을 긍정하는 존재이다. 매순간 끊임없이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삶을 주체적으로 돌파하고 극복하는 존재이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한 니체의 답이다.

이 순간이라는 길에서 하나의 길고 긴, 영원한 골목길이 뒤로 내달리고 있다. 우리 뒤에는 하나의 영원히 놓여 있다. 만물 가운데서 달릴 줄 아는 것이라면 이미 언젠가 이 골목길을 달렸을 것이 아닌가?

만물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언젠가 일어났고, 행해졌고, 지나가버렸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약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었다면, 난쟁이여, 이 순간을 어떻게 보는가? 이 길 또한 이미 존재했었음에 틀림없지 않은가?

이 순간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사물들을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방식에 따라 모든 사물은 이처럼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여, 자기 자신까지도? 만물 가운데서 달릴 줄 아는 것이라면 언젠가 이 기나긴 골목길 저쪽으로 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빛 속에서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이 거미와 저 달빛 자체, 함께 속삭이며, 영원한 사물에 대해 속삭이며 성문으로 나 있는 이 길에 앉아 있는 나와 너,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했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되돌아와 우리 앞에 있는 또 다른 골목길, 그 길고도 소름끼치는 골목길을 달려가야 하지 않은가. 우리들도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중에서

제주 애월의 바다 경계에 서다.(사진=정호영 비영리활동가)
제주 애월의 바다 경계에 서다.(사진=정호영)

니체의 초인사상과 영원회귀는 청소년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자신다운 빛깔과 방식으로 행동하는 삶을 그려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세상에 만들어 놓은 관념과 우상에 맞서는 일이다. 배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 세상의 불의와 타협할 때 죽은 오늘이 되고 말 것이고, 새로운 배움은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니체의 초인처럼 우상과 관념과 안락함을 벗어던지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하며, 자신을 향해 몰러 오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온갖 부정과 부패, 부도덕과 불공정의 시대에 맞서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주체인과 경계인, 초인의 자세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이고 매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
정호영 비영리활동가, 글로벌청년재단 준비위원장